지금 내 글쓰기는 내 삶의 현재진행형이다. 내 생각과 감정의 라이브 방송이다. 퇴사를 통보받은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쓰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되는 방송 프로그램처럼 퇴근 후 글쓰기를 스탠바이 큐 한다. 이건 내가 매일 하던 일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가까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팀에서 이미 열외된 나는 이제 야근도 없고 업무 부담도 없어서, 어둠의 장막 뒤에서 글쓰기로써 자신만의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퇴근 후 나는 책상 의자에 앉아 내 화이트 스크린을 방문할 순도 높은 문장을 기다린다. 오직 한 남자만을 기다리며 집착적인 글을 쓴 아니 에르노처럼, 나는 문장에 대한 단순한 열정으로 절망이 잦아드는 순간들을 버티고 있다. 특별한 문장이 오지 않아도 하루의 일과를 가감 없이 쓴다. 삶은 기어코 미완의 글을 세상에 꺼내놓게 만들었다. 몸통이 잘린 문장들은 상처 입은 나를 숨 쉬게 한다. 문장도 삶도 고통의 현재진행형이다. 상처 입은 것들만이 서로를 숨 쉬게 한다. 나는 거의 울면서 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쓴다. 눈물을 흘리고, 위장을 뒤틀고, 심장에 불 지피고, 바닥을 할퀴게 하는 이 글들은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실감' 속에서 태어난다. 오랫동안 글은 '마음의 활자화'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토록 직관적이고 실물적인 것이라면 차라리 몸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다만 이만한 삶의 고통에도 내 글이 아주 멀리까지 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언젠가 나도 분명히 "지나고 보면 괜찮다"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나여,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문장을 쓰려고 했는가? '지금'의 왕이자 권위자로서 말해주겠다. 지나기 전에는 안 괜찮다. 지나고 나야 괜찮다. 지났으니까 괜찮은 거다. 나는 내가 쓰는 이 글이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소설이나 시나리오처럼 대략적인 얼개를 가지고 살을 붙여가는 글이 아니다.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는데, 그 붓은 성인 1명을 자기 마음대로 끌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세고, 오랫동안 숨겨온 내밀한 것들을 마구 끄집어 낼만큼 우악스럽다. 나는 붓 앞에서 한없이 수동적이다. 그러니 이 글이 어디로 갈지는 글 쓰는 나보다는 붓이, 활자가, 키보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한 인간이 얼마나 구차하고 추저분하게 무너지는지를 증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지루한 신세한탄을 늘어놓다 때가 되면 다시 도시인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 드라마틱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삶이라는 것이 애초에 진창이라, 나 같은 인간은 우아하게 피어나는 연꽃들을 허위허위 간신히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난들 더러움에 물들고 싶었으랴?
나만의 밀실에서 나는 질문한다. 낮의 많은 장면들에 대해서 왜? 냉정하고 무서운 표정들에 대해서 왜? 미쳐 돌아가는 현실에 대해서 왜? 이렇게 마음속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 끼리끼리 논다고, 주변에 작가지망생 친구들이 몇 있다. 우리끼리 킥킥대며 이런 얘길 한다, 글 쓰는 사람치고 인생 멀쩡한 인간 없다고. 열등감에 쩔은 못난 인간들끼리의 이야기이니 부디 훌륭하신 작가님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길 바란다.
내 집에는 TV가 없다. 어릴 때부터 집에 TV가 없었고, 커서는 단칸방에 TV를 들여놓을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 흔한 유튜브도 (일 외에는) 잘 보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임에 나가는 것도 아니다. 혼자 뭘 하냐고? 읽고 쓴다. TV 안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보다 내 인생이 더 요지경이라, 나는 이렇게 자기만의 방에서 자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당신은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세상 살면서 이 정도 배신쯤은 다들 한 번씩 당해보지 않으셨는가.
위에도 썼듯이 이 글은 한 시절을 되돌아보며 쓰는 글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 쓰고 있는 글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우연히 제 글을 만나게 되셨다면 부디 날 선 문장이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울고 싶어서 우는 소리 하려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쓰고 나면 늘 극심하게 부끄럽지만, 동시에 '정신줄 붙잡자!'의 결기로 쓰고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