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반차를 썼다.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우울감과 무력감을 키우고 있다. 나는 겨우 월화수 3일을 버티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반차를 냈다. 분명 직전까지 함께 고민하고 진행해 왔던 일인데도 입장이 나뉘자 서로 다른 대륙으로 쪼개어진 듯 멀어진다. 이쪽에선 저쪽이 멀고, 저쪽에선 이쪽이 멀겠지. 안개처럼 망망한 예감이 든다. 예감은 곧 부재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나는 퇴사도 많이 해봤지만 그만큼 드나듦이 많은 조직들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사람을 받고 보낸 경험도 많다. 내가 보기엔 묵묵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는데 과하게 비난받고 묘하게 따돌림당하다가 조용히 퇴사하는 사람도 봤고, 중간에 들어와서 나이를 내세우며 선배 대접받기를 바라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빡쳐서 나가는 사람도 봤다. 기분 나쁜 말을 한마디 들었다고 하루 만에 모든 짐을 싸들고 자리를 비워버린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사람도 봤고, 분명 제일 늦게 입사했는데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핵인싸로 활약하는 신기한 사람도 봤다. 실력도 없고 인성도 개차반인데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콕콕 잘 보여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있었으며, 반대로 실력도 좋고 인성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자주 나갔다. 또 2명이 같이 입사했는데 서로 이겨먹으려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별 짓을 다하다가 둘 다 퇴사한 경우도 봤고, 사람을 뽑자마자 해당 팀은 조직 개편으로 사라지고 팀원들은 모두 인사발령 나서 완전히 엉뚱한 부서로 넘겨진 사람도 있었다. 엄청난 또라이 팀장 한 명 때문에 팀원 전원이 퇴사하는 희한한 생태계도 본 적 있으며, 누구한테 잘못 보였는지 국장급의 높은 자리에 있다가 아예 무관한 기술 부서로 발령 나서 후배한테 갑질당하다가 퇴사한 분도 있었다. 퇴사하려는 사람을 붙잡아 보려고 백화점에서 비싼 물건을 사서 선물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온갖 감언이설로 꾀어 놓고 영혼만 쏙 빼먹고는 새우 껍데기처럼 갖다 버리는 사람은 도처에 도사렸다. 잘렸지만 미련이 남아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도 펑펑 울면서 불쌍하게 퇴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막날 퇴근시간까지 작업물을 탈탈 털리고 아무도 배웅 안 해주는데 혼자 평소 퇴근하듯 퇴사하는 사람도 봤다. 또 잘라놓고 남은 기간 동안 '열정적으로' 일하라고 지시하는 소시오패스 상사도 만나봤고, 잘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같이 울더니 자기도 곧 잘린 상사도 있었다.
더 쓰자면 정말 무한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고 겪은 것만도 이럴진대, 참으로 일터라는 데가 입사와 퇴사의 삼라만상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경우를 차치하고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퇴사를 앞둔 사람에게 조금은 친절한 태도로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큰 문제를 일으켜서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차갑게 대할 이유는 또 무어란 말인가. 그냥 평소처럼,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왜 친절마저 가진 사람만 많이 가지고, 빈한 사람은 갈수록 빈할까. 나는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나는 늘 웃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위인이라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할 테지만, 내 마음은 참으로 헛헛하고 섧다. 나도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털어버리고 싶다. 요즘은 잘 웃는 내가 부쩍 싫어져서, "실은 네가 다 일부러 져 준 거 알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알던 과거의 나를 언니로 모셔오고 싶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날 괴롭혔던 배앓이가 약간 잠잠해졌다. 대신 혓바늘이 돋고 입술에 물집이 잡히고 입을 열 때마다 입술이 찢어져서 피가 흐른다. 낮에는 이를 망각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다 짜릿한 고통에 화끈하게 다 쏟아버렸다. 입술 각질이 살까지 이어서 뜯길 때, 나는 유리벽 안에서 괴성의 비명을 지른다. 이게 바로 현실에 데이고 베인 미친 도시인의 광기, 내가 아직도 웃는 걸로 보이니...?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예전에 좋아했던 문구를 하나 메모해 둔다. 쓰고 싶은 말이 더 많지만 오늘밤은 헛헛함을 이기지 못해 한잔 했다. 피로가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