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일이 내 직업이었다. 당신의 삶에서 빛나는 순간, 돌아가고 싶은 순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가장 화려하게 요약하는 것은 이 직업의 기본기였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박제해야 할 장면을 단 한 번의 직관으로 선택하고, 그 장면을 조각 작품처럼 깎고 다듬어 영상 언어로 변환했다. 어쩌면 나는 아름다움의 판사였고 시간의 조각가였다. 나는 늘 바빴고, 이 시간 저 시간을 넘나드느라 현재에 자주 부재했다. 당신이 미래에 간직할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순간을 영원히 잊게 하는 것이 내 직업이었다. 당신이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 이어지지 않는 모난 순간, 당신을 아프게 하는 순간을 나는 삭제했다. 나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과감히 자르고, 걷어내고, 지혈하고, 흉터가 남지 않게 봉합했다. 어쩌면 나는 상처 난 시간의 외과 의사였다. 나는 정밀한 작업을 위해 프레임이라는 섬세한 단위로 시간의 환부를 들여다보았다. 눈 깜빡이는 동안 흘러가는 찰나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어떤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을 영원히 잊어야 했다.
나에게는 많은 도구가 있었다.
Rec. 시간을 수집하고
Cut. 자르고
Edit. 수정했다
Stretch. 속도를 늘이거나 줄이고
Zoom. 때론 확대해 봤으며
Hand. 때론 수작업했다
뿐만 아니라,
Opacity. 기억의 농도를 조절하고
Anchor Point. 마음의 중심점을 잡았으며
Blend Mode. 시간과 시간을 뒤섞어 흔들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도구를 내 몸에 체화했다. 내 손가락 끝에는 언제나 단축키의 알파벳이 붙어 있었고, 그 부분까지도 모두 내 손가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현실을 앞에 두고도 남몰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세히 보고 싶은 순간에 Slow Motion을 걸 수도 있었고, 듣기 싫은 소리를 Mute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고독했으나 무한하고 자유로웠다. 그 속에서는 모든 꿈이 현실이었고, 모든 현실이 꿈이었으며, 모든 아름다움이 옳았다. 내 삶에서 의미 있는 모든 이미지와 텍스트가 바로 거기, 낡고 오래된 모니터 안에 다 있었다.
나는 여행가였다.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무리를 양 떼처럼 이끌고 온 세상을 여행했다. 시간의 행렬은 내 가이드를 따랐다. 나는 다가오는 시간에 Start를, 흘러간 시간에 Cut를, 완결된 시간에 OK를, 되돌리고 싶은 시간에 NG를 외쳤다. 미래가 선두에 설 때도 있었고, 과거가 하루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우리는 뒤죽박죽으로 걸어 다녔지만, 누구도 우리의 행진을 막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OK였다.
나는 제빵사였다. 시간은 밀가루 반죽이었고, 매일 시간을 조물조물 반죽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러면 시간은 숙성되었고, 발효되었고, 탕종식빵처럼 부드러워졌다. 나의 사명은 하나의 식빵처럼 촉촉하고 포슬포슬한 예술 작품을 구워 내는 것. 아니 어쩌면,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장면을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빵집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내 삶을 편집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시간의 연금술사이고 판사이고 조각가이고 예언가이고 외과 의사이고 여행가이고 양치기이고 지휘자이고 제빵사였던 모든 시간을 삭제할 것이다. 그 어떤 시간도 나를 삭제하려는 나를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삶이었나. 시간의 가위가 움켜쥔다. 오래도 견뎠군. 곧 손가락 끝부터 잘근잘근 잘려나가리. 내가 선택한 이 모든 직업, 깊이 사랑했노라…… 공포로 몸이 떨린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숙련된 시간의 기술자이므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상처 난 시간은 아물 것이다. 모든 순간이 쓸려나가고 순수한 영원만 남은 그곳에서, 언젠가 말할 것이다. 오래전 내 직업은 PD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