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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11. 2023

전세 사기에 당했다

퇴사일기#02

 나는 전세 사기에 당했다. 회사에서 잘리기 딱 반년 전, 그 유명한 '깡통 전세'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것이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냐고? 그게, 그렇게 되었다.


 나는 청년 빈곤의 '샘플' 같은 삶을 살아왔다. 스무 살 때부터 숱한 하숙방과 고시원, 단칸방에서 몸을 접어가며 서울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의 옹색함을 섭렵하였고, 나 자체로도 다방면적으로 인간적인 옹색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 파란의 세월, 내 꿈은 자연히 인간적으로 최소한 걸어 다닐 수 있는 집다운 집에 들어가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월세보증금은커녕 학자금 빚만 떠안고 대도시를 전전하기를 어언 16년, 겨우 대출 최소 조건의 전세보증금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빈곤의 종착지인 줄 알았던 그곳은 지옥의 초입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잔인하게도 내 이사 시기에 맞추어 급상승의 그래프를 그렸고, 업그레이드는커녕 다운그레이드나 안 하면 다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취방 에어컨은 고장 나서 물이 줄줄 새며 곰팡이 악취가 나고 있었고, 어디든 빨리 다음 집을 정해야 했다. 그 시기에 비슷하게 고달픈 지방 친구와 함께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집을 보러 다니다가 우리는 예정에도 없이 1+1으로 신축 빌라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아, 단지 몇 뼘 더 넓히고 싶었을 뿐인데, 인생이 통째로 깡통이 될 줄이야.


 사기꾼은 그날 하루가 너무 보람차다며 갑자기 우리를 무려 소고깃집에 데리고 갔다. 그는 연신 시시덕거리면서 소고기와 떡을 구워주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기뻐하는 사기꾼에게 저녁을 얻어먹었다. 우리는 아직도 어색함과 얼떨떨함을 무마하기 위해 소고기 인증 사진을 찍으며 수줍게 웃던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병신 같은 순간이라 여긴다.


 사실 나는 '깡통 전세'라는 단어도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지역이 악명 높은 '전세 사기의 지뢰밭'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사기꾼은 일부러 우리처럼 경험이 부족하면서 간절하고 어리숙한 청년들을 노렸다. 전세 사기는 부동산 중개인부터 신축 분양팀, 건축주, 매수인(바지 사장), 대출 은행, 감정평가사까지 합심하여 계약자의 보증금을 떼어먹는, 매우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만난 인간들은 하나같이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다. 중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였는데도 사기의 세계는 파렴치할 만큼 거대하고 탄탄했다.

  

 사기를 눈치챈 뒤부터 나는 시중은행과 부동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구청, 국토교통부, 경찰청, 국세청, 시민 단체, 변호사, 국회의원, 전세 사기 유튜브,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국민신문고, 다산콜센터, 언론 등 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미친 듯이 들쑤시고 다녔다. 잦은 이직 중에 열정 페이로 겨우 모은 전 재산을 한꺼번에 다 날리고 수억의 빚을 떠안게 될 위기였다. 그 시기 나는 매일 악몽을 꾸며 분노와 우울의 급류를 타는 '거의 미친' 여자였다. 어둑한 밤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초점을 잃고 앉아 있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실성한 듯 웃거나 나 자신조차 헷갈리게 꺽꺽 울었다. 회사에서도 점심시간마다 밥도 먹지 않고 정보를 헤집고 다녔고, 일하다가도 사기꾼들의 전화가 오면 두 손이 덜덜 떨리도록 소리치고 싸웠으며, 그러다가 자제력이 바닥나면 화장실 앞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팀원들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지켜낸 게 회사 생활이었다. 그 와중에도 야근까지 해내었으므로 유감스럽게도 나는 완전히 미치지는 못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미칠 수 있는 것일까.

 

 이 시대 청년들의 우울과 절망에 일자리 문제와 함께 양대 산맥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단연 집 문제일 것이다. 전세 사기 경력 또한 '청년 절망'의 고작 한 스펙에 불과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며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젠 '청년'이라고 불릴 나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희망 고문에 버금가는 '절망 고문'의 세월이 까마득히 스쳐 지나갈 뿐.


 전세 사기 문제는 차마 다 설명할 수 없는 난장 싸움 끝에 기적적으로 해결되었다. 확실한 것은 제도적으로는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으며 개인과 개인의 싸움 끝에 얻어낸 우연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여력을 쏟아부어 들어온 게 지금의 전셋집이다. 악을 쓰고 버텨낸 만큼 앞으로 열심히 일하고 모아서 다음에는 더 나은 데로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는데, 얼마 못 가 회사는 잘리고 이자는 100만 원으로 오를 줄이야. 아, 다시 막막한 도돌이표다. 다시 모르겠다. 다시 울고 싶다. 하기사 글이 뭐라도 해결해 주길 바라고 쓴 건 아니지만.


 이렇게 글을 써 봤자 현실적인 문제는 물론이며,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는 지금만이 그나마 정신을 차린 순간일 것이다. 진짜 나를 놓아버린 순간에는 이런 글조차 쓸 수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지금,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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