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월요일 오전이었다. 지잉. 폰으로 불쾌한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OO은행 이자납입] 금리 2배 적용 예정
비현실감에 폰을 흘깃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한 달에 내야 하는 전세 대출 이자가 약 2배로 불어났다는 이야기. 뭐? 100만 원? 나는 미친 두더지처럼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다짜고짜 앞자리 전셋집 자취생 동료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동료도 한숨을 푹 쉬며 사실은 자기도 야밤에 베갯잇을 적셨단다. 믿을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세계의 금융 위기에 일순 무릎이 휘청거렸다.
그날 오후, 사내 메신저에서 매우 수상한 상사의 호출을 받았다. "지금 시간 되면 이야기 좀 할까?......"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표현이었다. '시간 되면'이라는 정중함에 저 늘어지는 점들의 부자연스러움까지. 상사의 표정과 행동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늘 당당하게 의전을 받던 그는, 답지 않게 말단 대리의 커피를 직접 주문하고 날렵한 동작으로 서빙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입술을 오물거려 가며 엉금엉금 말했다. 구조 조정. 계약 해지. IMF 시대를 묘사할 때나 듣던 그런 단어들을.
지금 나, 잘린 건가.
얼얼했다. 영혼이 마비된 것 같았다. 오른 금리만큼 충격도 두 배였다. 장기 근속하는 사람이 많다느니, 다양한 복지를 제공한다느니,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느니 하는 말에 선택한 회사였다. 약 10년간의 방송국 및 신문사 생활을 접고 대기업 홍보팀으로 진로를 바꾼 건 바로 그 '안정성' 때문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한껏 표정을 구기던 그는, 당시 경쟁사에 출근하기로 한 내 결정을 번복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자기가 죽일 놈이라는 표정. 나 이 표정 처음 보는 거 아닌데. 저 표정을 품었던 수많은 얼굴들이 머릿속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에 허용 가능한 최대치의 불쌍함을 욱여넣고 대놓고 자신을 원망해 주기를 뻔뻔하게 요구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기꺼이 비난하라며, 이어질 내 역할까지 당당하게 선점해 버린다. 나는 저 치들을 위해 위악을 연기해야 하는가. 구조 조정을 통보한 상사는 절반 넘게 남은 커피잔을 직접 치우고 반납했다.
불현듯 며칠 전 아이디어 회의에서 상사의 상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영상 미디어 인력은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교체'하는 게 맞다고. 업계가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어쩌라고요? 저기요, 그런 건 감정 없는 기계한테나 해야 하는 말이에요, 그것도 모르세요?
내 20대와 30대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열정과 의욕만으로 끝없이 '교체'된 세월이었다. 새로운 매체와 뉴미디어 채널을 실험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영상 인력들이 더 싼, 더 어린, 더 순진한 이들로 소진되었다. 나는 내가 싱싱한 부속품이란 것도 모른 채 회사가 날 불러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달려가 닳은 곳에 기름칠을 하고 동력을 퍼부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10년이 지났고…… 30대 중반에 이르러 내게 남은 건 YOLO와 MZ세대라는 오명뿐. YOLO, MZ, 그다음은 뭘까?
이제 나는 싸지도, 어리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먹고살려면 또 몸값을 낮추고 면접장으로 연극하듯 입장해야겠지. 또 만나야겠지. 그들은 또 이직 경력을 지적하겠지. 부끄러움도, 끈기 없음도, 다 내 몫이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해명해야 한다. 이 빌어먹을 크리에이티브 때문에 내가,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이게 바로 젊음의 힘이라고!
면접장 밖에서는 유통 기한이 임박한 누군가가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우리를 자꾸 떠돌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언젠가 미안함으로 입술을 오물거렸을 면접관들인가, 아니면, 다시 이력서를 들고 이 더러운 대도시를 전전해야 하는 나와 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