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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11. 2023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Prolog

 나는 찢어지고 구겨졌다. 그러나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 어째서? 나는 공황 장애를 모른다. 나는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 나는 나의 제정신이 끔찍하다. 현실에 데이고 베인 미치광이 같은 글을 쓸 때마다 혹시 내가 진짜로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았지만, 진정한 미치광이는 글을 쓸 수도 없다 하더라. 아아, 미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가정사의 불운으로 박하고 억세게 자랐다. 학자금을 빌리고 알바를 하면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상경해 열정 페이를 받으며 고시원과 하숙집 단칸방을 전전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실업과 취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전세 사기에 당했다. 회사에서 잘렸다. 금리가 2배로 폭등했다. 전세 대출 이자가 갑자기 월 100만 원으로 올랐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망한 것 같다. 아니, 망했다!


 나아지지 않는다. 나아가고 싶은데, 나아지지가 않는다.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다. 이럴 때 할 줄 아는 게 쓰는 것밖에 없어서, 나는 찢어진 마음을 주워다 쓴다. 울 듯이 쓴다. 쓰듯이 운다. 쓰고 써도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애초에 찢어진 것이라 그렇다. 2023년, 나는 찢어진 마음의 조각을 줍는 대도시의 넝마주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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