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적막하고 밋밋한 생활 속에서도 내 감정은 자주 높게, 그리고 깊게 요동친다. 다시 사회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일에 열중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용기가 충전되지 않는다. 세상에 나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을까? 다시금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적시에 또렷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당연한 것들이 내게는 당연하지가 않다. 나는 의도치 않게, 아니, 의도와 정반대로, 나 자신을 가해하고, 나 자신에게 비겁해진다. 금리와 이자의 폭격 때문에 실업 급여가 끝나는 대로 알바라도 구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조금씩 재기하기에 현실은 사납다. 나는 낙담한다. 일 구하면 뭐 해, 전부 다 전세 이자로 내고도 모자랄 텐데. 이놈의 학자금은 도대체 몇 년째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야. 그 와중에 각종 세금 청구서는 왜 이렇게 꼬박꼬박 날아오는 거냐, 이놈들아! 이럴 때만 성실하냐! 그나마 적금 들어 놓은 국민연금도 못 주겠다며? 다 망쳐놓고 뒤꽁무니나 빼는, 이 더러운 세상아! 에라이, 지겨워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몸과 마음의 활력을 만들어 보려고, 텅 빈 통장 잔고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쓴다. 기분이 무거워지려는 기미를 보이면 바깥으로 나가 최대한 씩씩하게 걷고 꽃 이름을 외고 카페에 들르고 사람을 만나고 농담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 한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어디에든 팔자 좋게 앉아 있자면 이렇게 하릴없는 내 고민이 하찮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하찮은 것들이 내 어깨를 지구만큼 무겁게 짓누른다. 이런 식으로도 지구의 존재를 느낀다.
힘내, 힘내. 한숨 쉬며 홀로 걷던 밤, 친한 언니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따라 발음해 보았다. 그 말은 끝이 길었지. 그 말은 부드러웠어. 말의 길이와 높이와 음색까지도 흉내 내 본다. 그때 우린 눈시울이 붉어졌던가. 아프다, 우리 인생엔 왜 실업 아니면 실연뿐이냐. 버겁다, 젊음이 무작정 좋은 거라고는 말하지 말자. 늙는 거 좋다는 사람 본 적도 없다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40대에 가까워지는 애매하고 미숙한 인간들은 어쩌란 말이에요. 우리가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한 것들은 다 우리를 외면해요. 싫대요, 제 사랑이 싫다잖아요. 아이도 어른도 되지 못한 인간들은 가끔 만나서 같이 울어요. 지지리도 못나게 술을 마셔요.
나는 요즘따라 자주 질투가 난다. 이 나이 먹고 부모님과 싸웠다며 투덜거리는 지인에게, 너는 그래도 그런 부모님이 있잖아 라고 말하고 싶다. 나처럼 일자리를 잃었다지만 제 명의의 집이 있는 지인에게, 너는 이자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다 생긴 자식 때문에 피곤하다면서도 추억 만들기에 여념 없는 지인에게, 사실 부럽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듣되 안 듣고 있다. 갈수록 철이 없어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생각한다. 덩치만 자란 괴물 같다.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이 존재가 나라는 게 끔찍하다.
내가 들은 무수한 힘내,라는 말을 모방하다 보면 내일쯤은 나도 내 언니가 되어줄 수 있을까. 가까운 이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사랑을 받고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겨우 내디뎠다가도 자꾸 거둔다. 무조건적인 자애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핑계 삼아 어른의 몸으로 아이를 질투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나는 대책 없이 걷기만 한다. 서글프다. 가을이라면서요, 도대체 언제 시원해지나요. 이러다 또 금세 추워지려고 그러죠? 이 매정한 세상. 이 치사한 놈들. 이럴 거면 지금 아주 그냥 서리를 뿌려 보시지 그래요! 문학이,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싫은 계절은 길고 좋은 계절은 짧은 것을. 9월 중순인데 아직도 더운 날씨를 버둥버둥 탓하고 원망해 본다. 한심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