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아졌단 것도 모른 채 햇빛을 보겠다고 산책을 나간 날이었다. 5시인데 이미 사양(斜陽)이었다. 스산한 예감이 밀려왔다. 가을이 온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가을이 가고 있구나……. 나는 앞면인지 뒷면인지 알 수 없는 빛들이 천천히 연해지는 장면을 꿈결처럼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정원으로 향했다.6시가 되자 빛도 그림자도 평평해졌다. 앞도 뒤도 가뭇없이 어두워지는 그 순간에, 나는 왜 갑자기 꽃의 정면이 보고 싶었나. 꽃이 온종일 바라보다 툭 놓친 방향, 해의 자리, 그곳으로 빙 돌아 가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해바라기의 정면에 마주 서서,
아……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이런 거구나…… 하며 염치도 없이 서 있던 그 저녁,내 쓸모없는 어깨에 무언가가
가만
가만
두드리는 감각. 그것은 천사의 손가락이었다. 지는 해, 가는 계절 서글퍼 말라고, 당신이 나를 충분히 사랑했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보다, 당신이 나를 더 많이 사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