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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17. 2023

날지 못하는 새에게

#09

길을 가는 데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서 있던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진짜 새 맞지? 꼼짝도 안 하네, 아픈가 봐."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자세히 보니 정말 새였다. 모형도 장난감도 아닌 살아 있는 새가, 도로 위에서 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새는 자전거 바퀴가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몇 번 시도해 보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지나갔고, 이내 또 한 아주머니가 나타나 말했다.


"아이구, 날아가지도 않고. 진짜 아픈가 보네."


아주머니가 새의 꼬리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새는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쯧쯧, 어쩌누, 하며 아주머니도 지나갔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가려고 발걸음을 뗐다. 그러나 자꾸만 새가 눈에 밟혔고, 결국 몇 걸음 못 가 몸을 돌렸다.


새는 거기에 있었다. 왜소하고 연약한 존재. 날아야 하는데 날지 못하는 존재. 아픈가 봐, 불쌍해라, 날지도 못하네, 누구나 한 번쯤 안쓰러운 눈길을 주지만 이내 잊혀지는 존재……. 나도 모르게 새 앞에 주저앉았다. 새야, 이 땅이 하늘이라면 좋을 텐데, 그치. 고작 내 신발 높이도 되지 않는 곳에 멈추어 있을 새의 세상이 한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만 울고 싶어졌다. 이 아이에게서 날개를 앗아가다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사이에 잠시 에코백에 넣어뒀던 커피를 잊고, 새를 향해 잔뜩 몸을 기울였다. 에코백 안이 커피로 흥건해졌다. 카메라 렌즈와 배터리, 필터, 핸드폰이 갈색 액체 속에서 출렁거렸다. 하얀 외투과 하얀 신발이 온통 얼룩덜룩해졌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 닦고 수습하느라 다시 출발하는 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진 한 장 치고는 비싼 대가였다.


다시 길을 나섰을 때, 새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은 어쩐지 내게 오래 남았다. 아픈가 봐, 불쌍해라, 날지도 못하네…… 새가 사라진 자리에 한참이고 서 있었다. 새야,  작은 몸으로 어디로 간 거니. 새야, 다음 생에서는 민들레 씨앗으로 태어나렴. 그때는 이 세상 훨훨 날아다니자, 작은 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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