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Nov 11. 2023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시는지요?

#01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시는지요?


 오랫동안 뜻 맞는 누군가와 주고받는 서신 형식의 글쓰기를 꿈꿔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가난한 작가지망생의 조야하고 변변찮은 망상이라는 것을 어느 시기에는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한 번은 '내가 글 속에서 1인 2역을 해 볼까' 싶었습니다. 가상의 인물을 숨겨 놓은 아주 멋진 소설을 읽었었거든요. 그러나 그 또한 몹시 어려웠습니다. 허구를 쓰지 못하는 성정 때문입니다. 소설적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지요. 결국 저는 그냥 저답게, 이 서늘한 가을에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동시에 어디에도 닿지 못할지도 모르는 편지를, 그저 써 보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글을 금빛 반짝이는 가을에 '스타트'하고 싶었답니다. 제가 얼마나 가을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다소간 허풍을 떨면서 시작하고 싶어서 뭔가 그럴듯한 문구가 떠오를 때까지 미적거리고 있었달까요. 어떻게 시작할까, 무슨 내용을 쓸까, 누가 봐주기는 할까, 그런 식으로 어정버정하며 허송세월 하던 중에 저는 갑자기 계절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열흘인가 내리 잔 것 같습니다. 그러다 힘겹게 깨어났는데, 영하라니요, 제가 아는 가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요?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 것 그대로 종이에 쓰고 곧바로 밀봉해서 눈 딱 감고 보내버리는 편지처럼, 그렇게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남은 11월과 12월에는 연하고 순한 글을 써 보자 하고도 마음먹었습니다. 올해 내내 문장에 포악을 휘두른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죽자, 살자, 악에 받쳐 글을 썼던 일들이, 누군가는 그 글을 읽어주었고 그중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문장씩 두 문장씩 마음을 전하고 갔다는 것이, 그렇게 애쓴 마음을 껄떡껄 받기만 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포악과 악착 이전에 제게 얼마나 많은 친절과 다정이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맞아요, 너무 사랑했기에 너무 미워했던 것이에요. 일도, 사람도, 이 세상도. 아픈 다음 새 생명을 얻고 깨어난 오늘에도 여즉 미워요, 그러니까 여즉 사랑한다는 말도 되겠지요.


 답장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답을 갈구하는 마음이 수신을 전제하지 않은 이 편지를 쓸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는 이 편지를 읽어준다고 믿는다면 조금은 착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스스로를 안아주는 게 너무 어려울 때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안아주는 게 좀 더 쉬운 것처럼요.


  그러니까 이렇게 끝맺겠습니다. 조금 이른 말일 수도 있겠다마는, 어떤 계절을 지나왔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이렇게 조급한 문장을 썼나 보다 하고 너르게 헤아려 주시기를. 늘 저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편지하겠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습니다. 부디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