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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r 28. 2024

죽고 싶지만 면접은 봐야지

면접 직전까지 끈질기게 나의 평정심을 방해하고 있던 것은 목구멍을 틀어막는 감정의 총체였다 막막함, 답답함, 자신 없음, 의욕 없음, 그리고 우습게도 무엇보다, '합격'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 (오만과 거만이 아니라, 정말로 그 반대에서 기인한 것이다……)


1년이나 쉬고 보니 점점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쉬어도 충전되기는커녕 계속해서 여위고 사위어 갔다. 마지막 직장에서도 사실은 한계 너머까지 방전된 채, 타고 남은 재까지 모조리 갈아 넣어 버티었던 것을. 결국 본체마저 산산이 그을려 존재의 핵심인 충전 기능까지도 수명을 다해버린 것.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폐기 상태가 되었음을 모르고 계속해서 에너지를 주유하면서 다시 한번 회복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잔인한, 잔인한 '다시 한번'. 나는 최소한의 살아있음만 근근이 유지하며 평범한 날들조차 가까스로 통과해야만 했다. 정신뿐 아니라 체력도 폐기 상태였다. 나는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일어나고도 남들 잠드는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녹초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잠을 길게 자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내가 새벽마다 성실하게 출근해서 하루종일 무언가에 고도로 집중하며 도시인의 품격을 유지했다니? 그런 생활을 그렇게나 오래(약 13년) 지속할 수 있었다니? 그러면서도 크리에이티브를 잃지 않았다니? 나를 이렇게 지독한 번아웃에 빠트린 끔찍한 일을, 내가, 기어이 다시, 다시 하다니! 그런데…… 이런 상태를 일컬어 우울증이라 하지 않나?


같이 사기를 당했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할' 수가 있어? 세상 더러운 꼴 비교적 덜 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치자. 하지만 그들도 간발의 차이로 운이 없어서 끝도 없이 강퍅한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면. 배고픔도 서러움도 쉰내가 날만큼 허름해졌다면. 어제도 오늘도 똑같이 한심한 오뚝이가 되었다면. 고시원과 하숙방을 버티고 버티다 보니 명치가 먹먹한 게 일상이 되었다면. 이제는 나보다 어린 이들 앞에서 한낱 비정규직을 구걸하며 열정과 경력의 탈바가지를 써야 다면, 그들도…… 한 번쯤 그만 살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지금 일자리로써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사 백 여덟 가지 불행의 작은 한 예시일 뿐이며 나로서도 이것은 거대한 우울조각불과하다는 걸 안다.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겉으로는 안 우울해 보이는 가면형 우울증 환자일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일상적인 죽고 싶음을 가슴 한 켠 사표처럼 숨겨두고 희로애락의 탈바가지를 덮어쓰고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아름다운 글을 써낸 시인들은 전부 우울증 환자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면접에 갔다. 죽고 싶어도 면접은 봐야지. 이자와 세금이 한 달에 150만 원씩 꼬박꼬박 나가고 있는 걸. 대출로 대출을 막아야 할 위기의 목전이다. 이번에는 지난 면접 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손에 꼭 쥐고 있었던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는 윤동주의 시조차 마음을 붙들어주지 못해서, 대면 직전까지 '아 그냥 도망갈까?' 하는 내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 정상인가?) 나는 내가 (진짜로)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를 안내하던 분은 "별로 안 긴장하신 것 같네요"라고 말했으며 심지어 나는 스마트한 우수 사원처럼 심플하고도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기도 하였고, 엄숙한 표정으로 경쟁사를 능가하는 최선의 효율과 겸손한 노력을 선언하였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사람 좋은 솔직함으로 꺄르르 웃기도 하였다. (나 진짜 사이코패스인가 봐!)


그때, 면접관 중 한 분이 기습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너무 많죠."


하필 질문자 당신들에게 짓밟히도록 내가 버려둔 꿈, 그것은 꿈으로 빌어먹고 사는 이의 끈끈이 진드기 같은 생활적 후회와 발악적 슬픔과 생존의 버거움. 쥐며느리, 같은 그것의 허무함과 가망 없음과 초인적 크리에이티브. 그리마, 같은 꿈은 그런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유구한 의지로 차분하고 착실하게 양질의 경력을 쌓아 올렸음을 태연하게 이어 서술한 나는, (큭큭, 나 세상의 뒤켠에서 삶을 저주하는 글을 써대는 음흉한 작가지망생 인뎁쇼?) 지구에 나타 초대형 번데기 똥이 아닐까?


하기 싫어서 죽겠다면서! 합격할까 봐 무섭다면서! 나는 나의 충성스러운 로봇 조종사일까? 아니면 우울한 세포들의 웃기는 잡채 덩어리일까? 이 정신 나간 병적 위선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잠재적 폭탄 같은 인간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 그냥 폭탄 같은 존재들일까? 죽고 싶다는  착각일까?


바야흐로 운명의 주사위를 던졌다. 앞날이 너무도 보이지가 않아서 일단 눈 딱 감고 한 발 내디뎠다. 하지만 나는 마음 없이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주춤거리며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내 모든 생각을, 감정을, 내 이상의 능력으로 다스려줄 것으로 믿기에.




백수 생활 일 년 만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고, 한 달의 전형 기간 동안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오늘 면접 하나를 마쳤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오랜만에 도서관 책이 아니라 제 것이 된 새 책을, 허업허업 품속 깊이 끌어안았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곳에서,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신 분들이 사 주신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눈 감고 간다> 윤동주


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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