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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ug 24. 2024

여름, 한 숟갈의 설탕

#13

당신은 언제 '여름이다!'하고 진정으로 외쳤습니까. 저는 오늘이라고 말해야겠습니다. 백일몽 같이 열열한 여름 속에 첨예한 서늘함이 남몰래 스며들던 어느 오후, 우연히 여름, 을 육성으로 내뱉은 순간, 미래도 과거도 지금 여기의 여름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네, 갑자기 말예요. 모든 것은 갑자기.


그러자 불안과 질문이 점차로 뭉쳐서 설탕처럼 녹아내리던, 월화수목금토일이라 믿었던 모든 것 그저 한 숟갈의 설탕, 혀 끝에는 오직 곤한 단맛 뿐


세상에나 놀라워요 는 여즉 여름이 쓴맛인 줄로만 알았던 거예요


그래요 저는 여름날의 첫 산책에 대해서 말하려던 거예요, 일상의 틈새마다 주홍과 자홍의 꽃들을 피워내며 화려한 사랑을 갈구하던 여름에게 나는, 가난하느라 바쁘다며 등을 돌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폭식하며 살았습니다. 가난은 굶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가난은 폭식하는 자의 것입니다. 식하는 자를 만난 적 있습니까. 그는 꿈속에서까지 일자리를 전전하며 대출을 거절 당하고 알바비와 월세를 계산하다가 무슨 꿈이 다 이러냐고 차라리 이게 현실이었으면, 그러다 문득 깨어나 보면 집도 일도 아직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으니 이거 얼마나 다행이냐마치 꿈 같은 일이라고,


꿈이 좋아요 깨우지 마요 푹 자요 우리 모두 한 번 녹아내리면 끝이잖아요




여름은 가장 달게 잠드는 계절이라고,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편지를 썼잖아요




이봐요, 천천히 걸어요, 설탕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제 앞에 따뜻한 허락되지 않는다고 세상에 다 민원을 넣을 듯이 불만에 가득 차 으르렁거리던 알량한 가슴팍에도 여름이 꺾일 때면 남는 것은 단지 열대야적인 - - 슬픔 뿐


당신도 알죠, 무언가를 열열하게 미워하던 사람은 결국 슬퍼져, 슬퍼하는 사람은 착해져요. 결국 설탕, 한 숟갈의, 녹아내리는,


알죠, 당신이 잠들면 나 차마 깨울 수 없을 테니

이 여름 푹 자요 안녕하세요 다시 태어나지 마세요




*여담: 팔월의 어느 오후, 오랜만에 천변을 걸었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났지만 그날의 (제대로 된) 메모는 단 한 줄이었다.: '아이야, 폭식을 멈추어라'.


계절의 유언을 기억하며 다시, 희미한, 사라진, 몽상의 세계를 좇아본다. 이해되지 않는 마음을, 알아볼 수 없는 메모를.


다만 설탕이라는 공감각에 휩싸였을 때 내 곁에는 개망초와 검은 새와 무릎 높이를 날아다니는 여름 잠자리들이 있었고, 여전히,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너무도 친숙한 절망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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