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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Sep 06. 2024

맹목적으로 쓰고 싶은 밤에

#14

오늘 하루 편지를 쓰고 싶었다지만 보아 하니 언젠가 내가 썼던 글을 내가 베껴 쓰고만 있다, 다 끝나버린 글쓰기, 쓸 적에는 한 번도 좋아하지 못해 거지 쫓아내듯 대했던 그 글을 내가 이토록 필사하고 있다니


바람이 불었다 천변을 걸었다 주저앉고 싶어서 더 멈추지 못했던 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울었는지 이제는 다 아는 길, 그 시절 나를 미치게 한 것은 어쩌면 산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맹목적으로 쓰고 싶은 밤에 준비된 말도 없이 나를 종이 앞에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제는 글쓰기를 열망했던 시간 때문에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거 하나 붙잡고 이어온 병나발 같은, 내 곤고함을 감추려고 미친 듯이 주절거리며 들이켠 시간, 참으로 그만두고 싶던 쓰고 싶음, 그보다 계속 쓰고 싶던 그만두고 싶음, 그 술주정 같은 고집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을까


살기 위해 한 권의 책을 호흡기처럼 달고 살았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열 권책이, 이제는 권의 책이 필요하다,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는 책들, 나의 눈동자가 문장들을 훑어갈  바람이 분다, 읽어라, 나뭇잎들은 떨어져 내린다, 우우우우…… 붙잡고 싶은 것도 많았다지만 사실은 나도 나뭇잎이나 한 장 주워보려고 했을 뿐이잖아, 오늘도 지나가자, 그러면 또 한 페이지가 펄럭거리겠지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문장 위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시간은 완강하게 데려간다 때로는 내가 시간이고 시간이 나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주소를 옮겨 다니며 집 없이 살아온 거지 같은 내력,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끈질기게 환승하며 돌아다니던 거지 같은 근성, 정주할 수 없다, 걸어라, 그래도 잠시 머물러 갈 책 한 권 있다는 게 어디일까 싶고


그러나 이렇게 맹목적으로 쓰고 싶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시인들은 정신병에 걸리기 직전까지 미친 사람들이라지만 나는 시인이 되기 직전까지 미친 사람이라 정작은 누구의 것인지도 헷갈리는 그렇고 그런 고독이나 자괴하다가 산발머리나 될 텐데, 그만하자,


그만…… 그래도 문장  쓰지 못하면 이 산문을 마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술에 취해 뺨을 때리며 쫓아낸 당신을 다시, 종이 앞에 앉혀 두고 제발,


날 좀 봐 줄래요, 나뭇잎 한 장이 떨어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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