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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05. 2024

있었나. 없었나.

#15

가을 햇살이 커튼 틈새로 스며드는 오전, 검은 새가 내 손등을 부드럽게 간질인다. 시월이야, 나가보자. 얼마만일까, 계절이 나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반가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찍을 수 있고, 계속해서 쓸 수 있다. 스스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나 자신의 벗이자 고독 그 자체인 '검은 새'와 함께라면.

 


뷰파인더는 우리의 낡은 창문이다. 거길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지나가고, 구름이 지나가고, 그러다 보면 하루도 지나간다. 잡힐 듯 말 듯한 것들이 거기에 다 있다. 잡아볼까, 찰칵. 놓친다. 있었나. 없었나. 그런데 무엇이?



가을 숲길을 자분자분 걷는 나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 사위어 가는 은행잎들은 반절의 젊음과 반절의 늙음으로 뒤섞여 있다. 점점홍 마치 아직은 음이 남아 있지만 허물어지는 늙음 또한 감출 수 없는 나의 현재 같다. 가을과 나는 동년(同年)이자 동류(同流)다. 나도 종소리처럼 반짝이는 노란 잎이 될 수 있는 걸까. 쟁그랑, 사진에 담은 것은 빛인데 소리가 들린다. 귀를 대 본다. 느껴진다. 사진의 뒷면에서 누군가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 아마도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한 소녀.



먼 산을 바라보면 어떤 렌즈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결정할 수 없다. 내가 맞이할 미래가 석류알처럼 빼곡한 클로즈업일지, 뒤로 물러나 담아야 할 오케스트라일지. 앞날은 까마득하다. 그러나 바로 다음은 알 수 있다. 바로 앞에 있는 풍경, 지금 당장 붙잡고 싶은 것. 그것을 무엇으로 담을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미래는 잊어. 검은 새가 속삭인다. '바로 다음'만 보고 걸으면 된다. 그러면 이전까지의 나는 없고, 나를 잃어버린 나도 없으며, 저 멀리 나아가려 하는 나도 없다. 없다! 



나도 모르게 빛에 이끌릴 때, 반짝, 나는 거미줄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미는 빛으로 나를 유인했다. 나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옴싹 멈추어 버렸다. 어둠에 익숙한 존재를 유인하는 데에는 아주 작은 빛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게 이토록 아름답다니. 나는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찰칵, 박제당한다. 거미는 피사체가 스스로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고양이다. Frame In에서 Frame Out까지의 찰나.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고양이가 내게서 너무 빨리 멀어져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찰나를 놓친다. 그러나 허무는 붙잡는다. 허무는 내가 눈앞의 풍경을 사랑했던 하나의 흔적이다. 있었나. 없었나. 방금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지나갔는데. 그걸 놓쳤는데. 셔터를 누를걸. 어째서 누르지 않았지? 검은 새와 나는 서로 고개를 마주하고 갸우뚱.


하기사 내게는 고양이를 스스로 멈추게 할 아름다움 같은 건 없으니.



우리는 천사를 볼 수는 없지만, 천사가 남기고 간 흔적은 볼 수 있다. 숲에는 천사가 쉬었다 간 흔적들로 가득하다. 풀잎 모양의 접시 위에, 햇싸라기가 만들어낸 동글한 그림자에, 지금 막 손차양을 하러 가는 나의 이마에도. 나는 천사 없이 환희에 휩싸인다. 이 순간 유일하게 부재하는 건 시간이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진짜 천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사는 프레임 안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셔터를 눌러도 소용없다. 너무 밝은 빛은 결국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소량의 빛으로도 충분하다.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미소한 이야기, 소곤거림, 나는 그것을 듣는다. '듣는다'. 이때, 사진에 소리가 담긴다. 한 장의 사진을 귀로도 들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 또한 입술로도 읽을 수 있듯이. 당신은 나를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당신은 거기, 있는가. 없는가. 있다가 없는가. 그러나 있는 것은 있을 뿐이고 없는 것은 없을 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도시인이 아니다. 이곳에선 9시 이전도 없고 6시 이후도 없다. 그저 데구르르 굴러가는 도토리 한 알. 외톨의 사연을 궁금해 하는 사람 한 알. 이곳에서 카메라는 더 이상 장비가 아니다. 살아 있는 검은 이자 나의 오랜 . 검은 새와 함께 자연 속을 거닐 때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으며, 완전하게 고독하다. 우리는 소곤거리는 모든 것의 현장 감독이자, 수풀 사이에서 큐 사인을 외치는 거미다.


우리는 모두가 지나가는 길을 거부하고 호젓한 오솔길을 찾아냈다. 검은 새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으며 다정하게 속삭인다. 저기로 가자. 함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진의 뒷면으로.


조용하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은 없다. 이제 그다음이란 없고, 세상의 위쪽 끝에는 침묵과 잠자리뿐이다. 찰칵. 이것은 우리의 창문 밖 풍경. 세상의 끝이란 침묵하는 한 장의 사진이다. 검은 새는 언제나 내가 프레임 '밖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나는 오늘 세상의 끝을 통과하여 귀가하였는데, 실제로는 하염없이 창문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귀를 대 본다.


조용하다.


새근새근, 내 곁에서 잠든 검은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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