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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an 28. 2019

나만의 노트와 애플리케이션 장비

글쓰기 도구들, 골라 쓰는 재미가 있다!  

 

2000년 즈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10년 전 오늘’이라는 코너를 기획한 적이 있다.


연도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경험하며 10년 전을 추억하고, 오늘을 사는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그럴듯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코너였다. 첫 방송이 나가고 반응이 좋았다. 10년 전 오늘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인상적인 소식들을 “그땐 그랬죠”라고 소개하자, 잊었던 기억을 소환해줘 고맙다는 인사부터 현재의 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의견까지 청취자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담당 작가로서 뿌듯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코너를 준비하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다.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기사 검색을 하려면,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을 이용해야 했는데, 검색을 하고 기사를 확인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10년 전 기사는  거의 데이터화 되어 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국 근처에서 가장 크다는 시립도서관을 찾아갔다. 신문과 잡지를 연도별로 모아 놓은 간행물실을 찾아가 먼지 속에서 과거 해당 일자의 기사들을 뒤졌다. 대부분 대출이 안 되는 자료들이어서, 쓸만한 기사들을 발견하면 낑낑대며 신문 뭉치를 들고 가 복사를 하거나 노트에 일일이 옮겨 써야 했다. 5분짜리 코너를 위해 일주일 중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했다.       


만약 지금, '10년 전 오늘'이란 코너를 기획한다면 어떨까.”

기사를 검색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손가락으로 키보드 몇 번만 두드리면, 10년 전이 아니라 몇십 년 전의 기사도 찾을 수 있다. 방송작가나 연구자들이 즐겨 찾는 ‘카인즈 (www.bigkinds.or.kr)'란 사이트를 이용하면 오래전 기사들도 가뿐히 검색할 수 있다. 한국 언론연구원에서 구축한 이 사이트는, 기사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 분석이나 최근 이슈에 대해 심층 분석한 내용까지 얻을 수 있다. 결과를  번거롭게 복사하거나 프린트를 할 필요도 없다. 이미지를 캡처해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텔레비전 방송에 사용할 이미지로 확대하거나 편집도 가능하다.     


이외에도, 글감 수집 과정에 도움을 주는 빅데이터 분석 애플리케이션이나 검색 사이트들은 많다. 가령, ‘빅 워드’와 같은 무료 빅데이터 분석 앱들을 이용하면 찾고자 하는 단어별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고, 관련해서 어떤 이슈들이 급부상하고 있는지 최근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간단한 검색어만 입력하면 온라인상의 방대한 데이터들 중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알짜배기 정보들을 추려낼 수 있다.     


새로운 글이나 작품을 기획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데이터들 중 요즘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선호도가 높은 인물이 누구인지도 선별할 수 있어 유용하다. 글을 쓰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면, 특정 주제에 관한 데이터만을 골라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사용할 수 있다. 분야별 의사와 병원을 추천하는 의료 서비스 앱이나 맛집 탐방 앱, 영화나 도서를 소개하는 앱처럼 특화된 앱들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해주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까지 엿볼 수 있어 쓸모가 많다.     


글감을 정하고 자료도 충분히 모았다면,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한 편의 글을 쓸 것인지 논리적 개요를 짜야한다. 개요를 짤 때 내가 주로 도움을 받는 디지털 도구는 브레인스토밍이나 마인드맵 관련 앱이다. ‘생각의 지도’란 뜻의 마인드맵은, 창작자들이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정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중심 내용을 가운데 두고 거미줄처럼 생각을 확장시켜서 단어나 문장을 기록하면 마치 한 장의 지도처럼 시각화 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환경이 발전하기 전에는 종이에 직접 마인드맵을 그려야 했지만, 현재는 시중에 마인드맵 관련 앱이 여러 종류 나와있고 무료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들도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아이디어를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멋지게 보여주고 생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마인드맵을 그려가는 방식이나 결과가 보일 때의 디자인 등이 앱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에게 맞는 앱을 선택하면 된다.     


디지털 도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글쓰기의 생산성을 높인다.”

더 많은 기사를 빠른 시간 내에 검색할 수 있고, 데이터를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킬 수 있으며, 글 속에서 전달할 정보들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해 주고 오류를 잡아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그러나 디지털 도구들이 반드시 더 나은 글을 쓰게 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백하자면, 뻔하지 않은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을 때 나는, 편리한 도구들을 멀리 하고 오히려 추억의 도구들을 찾아 나선다. 글에 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빅데이터 분석에 의지하기보다는, 백지 위에 펜으로 낙서를 끄적인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나 포털사이트에서 보기 좋게 정렬한 기사들을 참고하는 대신, 종이 신문이나 잡지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펼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면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눈에 들어오거나 생뚱맞은 기사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와 연결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구성을 하거나 실제 집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앱이나 컴퓨터를 활용해 문장을 수월하게 썼다 지우며 막힘없이 글을 써나갈 수도 있지만, 원고지나 노트 위에 손으로 꾹꾹 눌러쓰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완성하는 데에 더 많은 고민과 진중함을 쏟을 수도 있다.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는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무거운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왠지 든든한 마음마저 생긴다.


디지털 도구와 아날로그 도구의 쓰임새는 그때그때 다르다.”

경험상, 빠른 시간 내에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글을 써야 할 때는 디지털 도구들을 잘 활용하면 좋다. 나에게 맞춤형 데이터와 툴을 제공하므로 편리하게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아날로그 도구들은 펜의 종류에 따라, 종이의 질에 따라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나는, 아이디어들을 두서없이 모을 때는 연필과 줄이 없는 재생지 노트를 주로 사용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만년필에 고급스러운 색지를 즐겨 찾는다.


분명한 사실은, 쓰고자 하는 글의 특성과 글쓴이의 취향에 따라 골라 쓰는 도구들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고 글 쓰는 시간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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