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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Feb 11. 2019

TMI, 과잉을 피하자

스토리텔링 실패 사례에서 배운다!

 

 영상 기획안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참신하고 유익한 기획안을 골라, 한 편의 영상물로 완성될 때까지 일정 금액의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공모전이었다. 지원금의 액수가 크고, 선정작이 되면 업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어 매년 경쟁률이 높다.


치열한 서류 심사를 통과한 15개의 팀들이 자신이 만들 콘텐츠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리를 가졌다. 모두에게 5분의 발표, 10분의 질의응답 시간을 주었다. 서류를 꼼꼼히 살펴본 뒤라 참가팀들의 발표보다는 질의응답 시간이 중요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심사위원 모두가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팀들이 있다. 모두 우수한 팀들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아쉬운 팀들이 더 뇌리에 남아있다.


‘실패에서 배운다’란 말이 있듯이, 그들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짚어 보면 글쓰기를 할 때 피해야 할 지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발표와 질의응답 과정을 거친 후 끝내 불합격을 줬던 팀들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모두 ‘과잉(過剩)’, 즉 지나침이 문제였다.    


실패 사례 그 첫 번째는 ‘수사(修辭)의 과잉’이다.”

수사는 원래 말과 글을 다듬고 꾸며서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술이다. 적절한 수사는 자신의 말과 글을 돋보이게 하고 주목하게 만들어 결국 타인을 설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늘 지나침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수사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겉은 화려한데 알맹이가 없는 문장이 되기 마련이다. 공모전 발표 현장에서도 그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참가팀이 모두 정갈한 정장 차림에 화려한 PPT를 앞세우며 들어왔다. 발표 시간 동안 자신들의 기획안이 왜 우수한지 의미 부여를 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최대”, “최초”, “최고”라는 단어들과 “한국의 OOO" 같은 비유들이 쏟아졌다. 듣는 내내 어지러웠다. 5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곧바로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실제 이 콘텐츠가 제대로 제작될 수 있을지가 심사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기획안대로라면 어마어마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시간과 제작비, 출연진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보였다. 질문의 핵심은 “제작 현실성이 있는가?”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들이 또 한 번 청중들을 어지럽게 했다. 발표자는 영어를 남발하며 번역투의 문장으로 손짓, 몸짓 등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까지 써가며 자신과 팀의 이력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잘 될 것이다’라는 신기루 같은 비전 제시가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이 듣고 싶었던 답은 끝내 듣지 못한 채 10분이 흘러갔다. 결과는 포장만 화려할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이었다.    


다음은 ‘정보의 과잉’으로 탈락한 팀들이 있다.”

정보 사회에서 데이터나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 싶겠지만, 그 많은 정보들을 하나의 줄기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이 또한 스토리텔링의 실패를 부르게 된다. 한 팀을 예로 들면, 그들이 선택한 아이템은 ‘4차 혁명’이었다. 기획안에서부터 4차 혁명에 관한 자료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나열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자, 발표자는 청중들에게 4차 혁명이 무엇인지 장황하게 강의식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지루했고 하품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던진 첫 질문은 “그래서 주제가 뭔가요?”였다. 4차 혁명의 사례들만 제시했을 뿐, 정작 이 영상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콘셉트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이다. 4차 혁명이 무엇인지는 포털사이트만 검색해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적어도 영상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제작진이 전하고 싶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정하고 이를 위해 무슨 사례를 선택, 강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지만 말해주면 된다. 구슬은 잘 꿰면 작품으로 재탄생해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구슬들은 그저 재료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조사하거나 수집한 정보들을 작품에 모두 담아내겠다는 행위는 ‘뭣이 중한지’ 모르는 스토리텔러의 무지이다.    


마지막 실패 유형은 ‘감정 과잉’ 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이는 특정 사람이나 사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방송 글쓰기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 이번 공모전에서도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곱씹어 보거나, 좌절을 딛고 성공한 공동체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깨닫게 하려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들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여 화려한 수사를 덧붙일 필요도 없었고, 구체화된 사례가 있으니 방대한 자료들을 제시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의 경우, 의외의 부분에서 심사위원들을 실망시켰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주인공을 향해 동정심이나 연민을 품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성공에 찬사를 보내며 경외감을 느끼길 종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미리 제시한 구성안은 신파로 흐르고 있었고, 출연자에 대한 서술도 감정을 담은 표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테랑 작가들은 휴먼 다큐멘터리 등을 쓸 때, 가장 피해야 할 요소 중 하나로 작가의 주관적 해석을 꼽는다. 성우에게 더빙을 부탁할 때도 최대한 담담하게 읽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감정 과잉형 스토리텔링은 참신하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진짜 감동을 전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팀들이 공모전 최종에 올랐을까?”

요약하면, 앞서 제시한 세 가지 과잉의 실수를 하지 않은 팀들이었다. 참가자나 콘텐츠에 대해 꾸미기보다는 솔직한 답변으로 일관하며 명확한 언어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한 팀, 필요한 정보만을 제시하며 구성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낸 팀, 마지막으로 주관적 시선을 강요하기보다는 누가 보아도 동의할 수 있도록 객관적 시선으로 공감을 이끌어낸 팀들에게 심사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인생에서 실수를 막는 지혜 중 하나이다. 또한 글쓰기의 실패를 막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오히려 화를 부를 때가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기본 원칙들을 무시한 채 품은 욕심일 때는 더욱 그렇다. 기본을 지키고 내실을 기한 작품은 이변이 없는 한, 누구나 그 진정성을 알아보는 법이다. 남들의 콘텐츠를 평가하고 조언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 형식이나 기교보다 본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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