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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an 21. 2019

한 번쯤 낯설게 보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방송가에는 인생 명언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최근 방송이나 영화들을 훑어봐도 인문학, 요리, 치유 등 주목받는 아이템들은 이미 작품으로 만들었거나 기획을 마친 단계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려고 보면 어느새 비슷한 작품이 세상에 나와 있어 실망하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절망이 아니다. 같은 소재, 비슷한 주제라도 접근 방법을 달리해 보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남들과 같지 않은 참신한 시각은 존재한다. 주위에서 흔히 보던 사물이나 대상이 찰나의 순간,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으로 대해서 무섭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왜소하고 힘없는 노년이 보여 마음이 저려 온다. 항상 이용하던 버스 정류장인데 언젠가부터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다면 그 장소는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 된다.  누군가에겐 한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이지만 내가 그린 그림이나 캘리그래피가 담겼다면 결코 버릴 수 없는 보물로 간직해야 한다.     


늘 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유난히 낯설고 작아 보일 때가 있다.


참신한 시각은 이렇듯, 낯설게 보았을 때 가능하다. 대학에서 ‘영상 스토리텔링’에 관한 과목을 가르칠 때, 한 학기에 한 번씩은 야외수업을 했다. 두,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야외수업에서는 꼭 현장에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을 삼삼오오 짝지어주고 가장 흔해 보이는 대상이나 풍경을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 가장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오라고 시켰다.


학생들이 찍은 사진들 중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도서관 앞 벤치에 놓인 종이컵을 촬영해온 학생들은 종이컵 입구에 이로 여러 번 깨문 자국을 클로즈업해 졸업을 앞둔 학생의 초조함이 엿보인다는 이야기를 입혔다. 학교의 제일 높은 건물 옥상에서 캠퍼스 정경을 찍은 학생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고단하고 치열한 대학생활이지만 멀리서 보니 낭만이 가득한 공간이라며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기억할 캠퍼스 생활을 미리 만난 것 같다고 했다.      


낯설게 보기는 어렵지 않다!”

늘 가까이 보던 대상이라면 한 번쯤 멀리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일한 위치에서 보던 사물은 위, 아래를 바꾸어 뒤집어 보는 것도 새로운 접근법이며, 습관처럼 매일 걷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면 조금 오래 걸리고 불편한 길에서 매력적인 사람이나 풍경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방송작가로서 나 역시 동료들과 많은 작품들을 기획했다. 모두 나의 땀이 깃든 작품이라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애정이 가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특히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안팎에서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던 콘텐츠들이 그렇다. KBS 1 TV에서 밤 12시를 넘긴 심야시간에 방송했지만,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던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씨네 투어 영화 속으로>도 그중 한편이다.     


<씨네 투어 영화 속으로>는 ‘감독과 함께 떠나는 영화 촬영지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된 작품이다. 한 편의 영화를 선정해, 영화의 주요 촬영지나 소품을 발견한 공간 등을 영화감독과 직접 찾아가 본다. 이때 감독과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 혹은 영화평론가가 감독과 동행한다.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며 그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공들여 연출한 장면에 감춰둔 의미는 있는지,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갖기를 의도했는지 등을 묻고 답했다. 영화 촬영지로 여행을 떠나며 시청자가 직접 감독이나 평론가가 되어 영화를 읽어보는 새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이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온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방송이 회를 거듭하자 게시판에 찾아와 영화 속 공간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평이나 마치 영화 촬영지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는 평들이 이어졌다. 그 덕에 제작진들은 며칠씩 이어지는 야외 촬영에 몸이 힘들어도 기쁘게 방송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작품의 기획안을 잘 썼다고 반드시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기획은 뛰어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벽이슬처럼 사라져 버리는 콘텐츠들이 무수히 많다.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진 못해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글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멈춰 서서 생각할 거리를 던질 수 있다면 이 역시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오늘도 방송에서 독창적인 시각을 제안하고 다양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만난다. 그 작품들이 말하는 듯하다. 한 곳에 고여 있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창작자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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