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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an 07. 2019

꾸준히 쓴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작가인가요?

앗, 망했다!     


잠시 눈을 붙인다고 책상에 엎드렸는데 너무 오래 자는 것 같은 느낌에 잠이 깼다. 세상에, 생방송 십분 전이다. 모니터에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만 덩그러니 쓰여 있다. 순간 아찔해져, 노트북을 들고 스튜디오를 향해 뛴다. 라디오 부스에 도착하자 기다리던 PD와 진행자가 나를 보며 동시에 외친다.    


"김 작가, 원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일단 앉아서 노트북을 펼치는데 머릿속은 멍하고 손가락도 움직이질 않는다. 생방송을 망칠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이 차오른다.      


“죄송한데, 진짜 죄송한데, 오늘은 원고를 못 쓰겠어요.”    


그 순간, 저 멀리서 어렴풋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일어나, 여보. 꿈이야, 꿈꾸는 거야.”    


악몽이었다.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제시간에 글을 완성하지 못해 큰일이 벌어지는 꿈을 종종 꾼다. 실제로 글을 제때 마무리 짓지 못한 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꿈을 계속 꾸는 이유는 글쓰기가 그만큼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일이란 뜻일까? 아니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늘 품고 살아서일까?     


망한 글에 관한 악몽을 꾸면서도 나는 20년 넘게 글밥을 먹고 있다. 때론 부족한 실력에 설익은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론 욕심이 과해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글 쓰는 일을 멈춘 적은 없다.     


'망한 글'을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어느새 20년차 글쟁이가 되었다.


이런 나에게 언제가 따지듯 묻던 이가 있었다.    


“당신은 작가인가요?”    


나를 방송작가라고 소개하자 ‘진짜 글’을 쓰고 혼자 완성한 ‘작품’이 있어야 작가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가 본 나의 일은 출연자가 하는 말을 정리하고 영상에 덧댈 짧은 문장을 쓰는 것뿐, 작가라고 부르기엔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질문을 들은 후 되물었어야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작가, 진짜 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문학상이나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람은 작가로 인정받는다. 권위 있는 문예지 혹은 잡지에 글을 싣거나, 책을 출간할 때마다 화제가 되는 유명인에게도 작가라는 호칭이 뒤따른다. 작가는 권위와 영향력을 갖춘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며 글감을 찾고, 일상에서 마음에 남는 단어들을 늘 메모하며, 공들여 선택한 낱말을 모아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나 혹은 당신이 작가가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불려야 할까?    


나는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글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하나 배웠다. 그래서 ‘작가’라는 말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져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망한 글’을 숱하게 쓰며 글쓰기의 기본에 대해 체득해나간 경험이 앞으로 전할 이야기에 가감 없이 담길 것이다.


 글을 담는 그릇의 형태는 제각각일 수 있어도 글을 도구 삼아 나의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한 기술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 글이 가진 미덕은 친숙함이다. 글의 소재를  주변에서 찾고,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문제들을 건드린다. 보편적인 정서에 벗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방송 글의 문체 역시, 옆 사람에게 들려주듯 대화체를 쓴다. 간결한 문장, 익숙한 구조를 선택해 누구나 한번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쓴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쉬운 말로 쓰는 글이라면 당장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글쓰기 여정에 동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망한 글을 몇 번이고 고쳐 쓰면서 깨달았다.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한 번에 완성하지 못해도 한 줄, 한 줄 이어나갈 힘이 있다면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생소하던 풍경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도 자주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조금은 낯설고 막막하던 글쓰기도 거듭하다 보면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고, 호흡하듯 자연스러운 일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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