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미 Mar 19. 2019

여행 에세이 혹은 여행 책 기획하기

디테일한 글쓰기가 필요하다!


올해 초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삼대가 함께 떠나는 여행은 남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떠나기 일주일 전 예비모임을 가졌다. 여행의 기획자이며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남편은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 이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여행을 적잖이 귀찮아하던 나는 속으로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사진은 찍을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흘렀다. 그리고 며칠 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가족여행 사진들을 인화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확대해서 부모님 댁 벽에 걸어두기로 했다. 참 이상했다. 언제 여행을 다녀왔나 싶게 여행 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고 있으니 여행지의 풍경, 날씨, 음식, 그 순간 가족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우리를 다시 여행을 떠난 그날, 그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여행 에세이를 쓰는 일은 여행을 다녀와서 최고로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고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여행기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 한 조각을 떼어내 글로 옮겨놓는 과정이랄까. 글을 쓰는 데 정해진 형식은 없다. 단, 자신이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을 솔직하게, 거짓 없이 쓴 글이어야 할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많은 일을 겪는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사전 정보를 많이 모은다고 해도 막상 현지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다양한 일을 겪다 보니 일상에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시간의 관한 상념에 잠길 수도 있고, 여유로운 현지인들의 미소에서 쳇바퀴 돌듯 살고 있는 일상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메모장을 꺼내거나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 그 순간을 기록하자. 사진이나 간단한 그림, 낙서를 남겨도 좋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며 들뜬 마음을 내려놓았다 해도 여행지에서 남긴 메모한 줄, 그림 한 조각이 우리를 다시 여행지의 추억으로 안내할 것이다.


여행 에세이에서는 여행 당시 상황이나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묘사하는 기술이다. 보통 여행 블로그에 실리는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경험담이 좋은 예이다. ‘아주 맛있다’가 아니라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식감을 느낀 바에 대해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보듯 세밀하게 서술한다.


눈을 감고 전하고 싶은 이미지를 하나 떠올려 보자. 일단 자신의 머릿속에서 대상을 찬찬히 관찰한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설명할지 기준점을 잡는다.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단어를 피하고, 구체적이고 적확한 단어를 골라 표현해보자.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이 아름다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 그때 자신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땠는지, 햇살과 바람은 어떻게 느껴졌는지, 발이 닫던 지면의 감촉은 어땠는지, 귓가를 스치는 자연의 소리는 무엇이었는지 등 오감을 깨워 순간의 기억을 되살려 써보자. 독자가 글쓴이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면 비유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해도 좋다.


“다음 날 새벽차를 몰고 모두 잠든 조용한 거리를 통과할 때는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혼자가 좋다> 중에서(프란치스카 무리 지음, 유영미 옮김, 심플라이프, 119쪽)


여행 에세이가 여행을 다녀온 후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쓴 글이라면, 여행 정보에 관한 책들은 떠나기 전부터 기획이 필요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책을 내겠다는 다짐이 섰다 해도, 콘셉트나 주제에 맞게 책의 뼈대를 세운 다음에 써야 한다.


강연 현장에서나 메일을 통해 나에게 여행 책을 내고 싶다고 넌지시 고백하는 이들이 늘었다. 의견을 보탤 테니 대강의 ‘출간 기획안’을 보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 곤란해한다. 미처 기획안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쓰고 싶은 책에 대해 한 줄로 요약하여 다른 여행 책들과 무엇이 다른지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이 요청에 응답하는 이도 많지 않다.


여행 책을 기획하는 일도 방송이나 강의, 상품을 기획하는 일과 비슷하다. 결국 기획은 특정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여행 책을 내고 싶다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어야 하지 않을까?”


첫째, 얼마나 차별화된 내용인가. 여행 정보를 전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면 초보 여행자를 도울 수 있는 친절한 콘셉트로 접근할 것인지, 이미 여행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이색적인 여행 정보를 제안할 것인지 고민해보자. 시중에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여행지에 관한 책이 많이 있다면, 그때는 작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여행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요트 등 여행을 다니는 방법이 남들과 다르거나, 모자(母子)가 함께하는 여행, 마흔을 맞이한 남성의 나 홀로 여행 같이 테마가 분명할수록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다.


둘째,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실행력이 있는가. 여행을 가기 전에 책을 기획한다면 목차를 한번 꼭 써보라고 권한다. 목차 쓰기는 간단해 보이지만 책 전체에 흐르는 주제를 명확히 잡아야 하고, 많은 꼭지들을 어떻게 묶거나 배열할 것인지 고민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목차를 써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책 한 권을 짓는 데 상당한 양과 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행 책에는 글과 함께 시각적인 이미지를 함께 담아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지의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라면 그림을 같이 구성하는 책을 기획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을 떠나기 전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기술을 미리 익혀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행지에서 작가만의 시선이 담긴 작품을 곁들이는 것도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여행 에세이나 여행 책을 쓰고 싶다면, 자신이 쓴 글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마치 여행지에 있는 것 같은 상상의 즐거움이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독자보다 한 발 앞서 걸으며 친절하게 여행지를 설명하는 가이드처럼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쏙쏙 골라내어 알기 쉽게 들려줄 수도 있다. 여행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디테일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전 15화 온라인 공간을 놀이터로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