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을 꿈꾸며
친구가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친구는 나를 만나자마자 평영을 배우는 중인데 자유형이나 배영을 배울 때보다 어렵다며 하소연을 했다.
"평영을 할 때 팔 동작과 다리 동작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어. 자꾸 제자리에서만 버둥거리게 되네."
20대 때 나름 모든 수영 영법을 마스터한 나는, 수영 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리듬을 타야 해, 리듬을! 동작들을 팔, 다리 따로 끊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에 몸을 맡기고, 힘을 빼고, 전체 동작이 하나로 이어지듯 이루어져야 해. 쿵쿵 짝 이렇게 박자를 타야 한다고."
친구는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묻는 눈치였다.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이게 아닌가 싶었다.
20대 때 처음 수영을 배우면서 나 역시, 강사가 알려준 대로 동작을 따라 해도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강사는 나에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어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하세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속으로는 '이 사람아! 그게 쉬우면 내가 왜 이 새벽마다 당신을 찾아오겠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를 외쳤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유명한 프로골퍼의 인터뷰를 듣게 됐다. 자신은 혼자 훈련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며 스윙 연습을 한다고 했다. 모든 운동은 나름의 리듬이 있기 때문에 운동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 하면 몸이 저절로 박자를 타게 되고 동작들이 유연하게 이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다음날 수영장에서 들은 말을 실행에 옮겼다. 머릿속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리며 그 노래 박자에 맞추어 물속에서 손과 다리를 저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박자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어떤 운동을 하든지 기본 동작을 할 때는 속으로 노래를 하듯이 리듬을 타는 버릇이 생겼다.
리듬은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음의 장단, 강약 따위의 흐름을 뜻한다. 의미를 더 넓히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현상 모두를 리듬이라 칭할 수 있다.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어 움직임이 반복되게 일어나고 그리하여 일련의 행위들이 나름의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나와 남편은 잠들기 전 종종 “오늘 하루 행복했어?"라고 묻는다. 그럼 하루를 되돌아본 후 "응"이라고 답하거나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야기한다. 요즘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나만의 기준은 일상의 리듬이 지켜졌는가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랫말처럼,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해서 내 몫의 일을 마치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책상 앞이나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별일 없이 고만고만하게 보낸 오늘! 그런 날을 나는 행복한 하루라 정의한다.
나이가 들수록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롭기보다는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편안한 하루가 이어지면 이 리듬을 깨는 파열음 같은 불행이 불쑥 찾아오는 건 아닐지 두렵기까지 하다.
원래부터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하루에 만족감을 느끼던 성향은 아니었다. 20대의 나는 꽤 즉흥적인 삶을 살았다. 부산에 살았지만 보고 싶은 뮤지컬이나 가수의 공연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순간이동을 했다. 공연을 다 본 후에는 다시 밤기차를 타고 내려와 뜬눈으로 출근을 했다.
어느 날은 대학 동창생들과 모여 술을 마시다 “떠나자, 지금 당장!”을 외치며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안내판을 보고 아직 운행하는 버스 중 해변 이름이 적힌 버스를 골라 무작정 무박 이일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방송작가의 삶이야말로 생활에 일정한 패턴을 갖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하고, 구성안을 쓰고, 촬영 후 편집을 하는 굽이 굽이의 과정을 매번 거쳐야 했다. 이 순서가 관성에 따라 규칙적으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매번 어느 한 군데서 '삐끗'하고 엇박자가 나곤 했다.
아이템을 찾지 못해 휴일을 반납하기 일쑤였고, 섭외한 출연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서 눈물을 훔치며 전화를 돌리기도 했으며, 구성안이나 대본을 쓰는 과정이 순탄치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날은 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한 프로그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어느 정도 적응할 때 즈음이면 개편을 앞두고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형식에 큰 변화를 꾀해 다시 새로운 리듬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도 다음 순간을 그리고 내일을 예측할 수 없던 그 하루들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난 고리타분한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라! 열정을 갖고 역동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잖아. 난 살아있다고!’라며 뮤지컬에서나 나올 법한 오글거리는 독백을 속으로 되뇌었다. 짜이지 않은 즉흥곡 같은 변화무쌍한 일상을 사는 내가 스스로 꽤 멋져 보였고 행복감을 느꼈다.
지금은 달라졌다. 마감이 촉박한 일을 맡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고 환경과 타인에 의해 일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당황스러움이 먼저 앞선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을까? 마흔을 넘어 중년이라는 시기에 접어들며 점점 게을러지고 안일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련이 와도 두렵지 않다던 청춘의 용기가 세월의 풍파에 소멸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겸손해져서가 아닐는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이나 조카들을 돌봐야 하는 ‘어른’의 위치가 되면서부터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가족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리면 누가 아프다는 소식이 아닐까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동안 열심히 대비한다며 바지런을 떨며 살아도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것이 가까운 사람과 관계된 일일 때는 나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롤러코스터에 앉은 듯 좌절과 성취감을 오가며 짜릿함을 느꼈던 20대의 삶과 달리, 조금 재미없고 밋밋한 일상이더라도 회전목마처럼 한 바퀴 돌면 다시 어제의 풍경으로 돌아오는 리듬이 일정한 삶을 더 동경하게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 하루를 정리하며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뻔한 리듬이지만 그 리듬을 타며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리더라도 각자의 박자대로 살아가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내일도 별일 없이 이 리듬에 몸을 싣게 해 달라고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