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는 여자
나는 VIP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돈을 내고 지나칠 수 있는 카운터를 나는 직원과의 눈인사 한 번으로 통과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동선이 최적화된 중심 자리에 나를 위한 전용 사물함이 있어 짐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곳에 도착하면 거르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만나본 최고의 바리스타가 커피와 얼음의 비율을 내 입맛에 정확하게 맞추어 준비해 준다.
그곳은 바로, 공중목욕탕이다. 내가 동네 목욕탕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이유는 매일 목욕탕을 찾는 '달 목욕 회원'이기 때문이다. 자타공인 온천욕 덕후인 나의 목욕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모든 것이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시작되었다.
"엄마, 애들이 나한테 맛있는 냄새가 난대. 오늘도 나보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 도시락 반찬 뭐 사 왔냐고 묻던데?"
다음날 새벽, 엄마는 단잠에 빠져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우셨고 그날부터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간에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엄마는 호떡과 튀김,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을 운영했고 가게에 달린 방에서 엄마와 나, 남동생이 같이 생활을 했다. 엄마의 손맛과 넉넉한 인심 덕분에 호떡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가게는 물론이고 안쪽에 자리한 방까지 하루 종일 식용유 냄새가 가득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었던 엄마는 '페브**'도 없던 시절, 행여 우리 남매 옷에 기름 냄새가 밸까 봐 매일 뽀송하게 빨아둔 옷을 갈아입게 했다. 세 가구가 함께 화장실을 쓰는 구조라 따로 우리 집만의 욕실이 없었지만, 엄마는 가게에서 뒷마당으로 향하던 공간에 슬레이트 지붕을 만들어 씻을 공간까지 마련하였다.
간이 욕실에서 세 식구는 겨울에도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아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런히 씻었다.
엄마의 노력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학교에서 제일 깔끔한 아이로 불리는 영광을 주었다. 담임선생님이 "주미는 어쩜 이렇게 매일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나고 옷도 단정하니?"라며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교복을 입게 되자 매일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수 없었고, 이른 등교 시간과 학원까지 들렀다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이 이어지자 나는 대충 씻고 집을 나서거나 잠자리에 드는 일이 잦았다. 내게서 난다는 '고소한 냄새' 때문에 사춘기에 갓 접어든 딸이 놀림을 받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엄마는, 날마다 목욕탕에 데려가서 어제의 냄새를 속까지 말끔히 지워내기로 결심했다.
달 목욕의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그 이후 친구들은 내게 기름 냄새나 음식 냄새가 난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처음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목욕탕을 향하는 것이 귀찮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온천욕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열네 살의 나이에 뜨거운 탕에 들어가 앉으며 "으~아! 시원하다"를 중얼거리고 몸을 '지지는' 맛을 알게 되었으니까.
집을 나설 때는 적막하고 으스름하기만 하던 새벽녘 세상이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하루를 여는 부산한 소리들과 함께 파란빛으로 밝아오는 풍경까지 덤으로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청량한 새날을 맞이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달 목욕은 일상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누가 물었다. 하루를 보내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이나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음을 던진 이는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나 타인의 텍스트를 챙겨보며 읽는 일과 같이 작가에게 얻을 수 있는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것이었으리라.
질문을 받자 퍼뜩 떠오르는 단어는 '달 목욕'이었다. 마흔이 넘어 중년이 된 나는 욕실이 두 개나 딸린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반신욕을 할 수 있는 널따란 욕조까지 갖추고 있고 더운물은 수도꼭지를 돌려 3초만 기다리면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내 몸에서 더 이상 음식 냄새나 기름의 쩐내도 나지 않는다. 결혼하여 엄마와 헤어져 산 지 14년째이고, 엄마는 장사를 접었다. 그러니 사실 달 목욕을 다닐 명분이 더 이상 내게는 없는 셈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달 목욕을 다니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터덜터덜 목욕탕으로 걸어갈 때면 어제 나를 고단하게 했던 생각과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피로, 나도 모르게 행했을 부끄러운 행동의 잔재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몸이 무겁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설탕 한 스푼을 살짝 친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뜨끈한 허브탕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하루를 살아낼 새 기운이 서서히 혈관과 근육을 타고 퍼진다.
본래부터 물을 좋아한 것인지, 달 목욕을 하고 난 후 물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탕 속에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때 나의 마음은 아기가 요람에 누운 듯 제일 편안한 상태가 된다. 어느 철학자는 자기를 배려하고 돌보는 데에 최고의 실천법이 명상이라 했다는데, 나는 매일 아침 온천욕을 하며 명상에 잠긴다.
탕 속에서 눈을 감고 있으며 오늘 꼭 해야 할 일들을 마음에 새기기도 하고, 새로 쓰는 글이나 작품의 영감이 떠올라 막혀있던 작업의 실마리를 풀기도 한다. 사람 사이에서 상처를 받은 날이면 따뜻한 온기를 품은 물살이 괜찮다고, 상처 받지 말라고 위로로 지친 몸과 다친 감정을 품어주기도 한다.
달 목욕은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며, 아무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쓰듯 진짜 나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소녀 시절, 냄새를 지우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목욕탕이 중년이 된 지금은 치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삶의 찌든 향기를 씻어내고 행복한 향기를 새로이 채우기 위하여 오늘도 나는 달 목욕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