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자
“나는 ‘문어’입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의실 안 사람들이 하나, 둘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누구도 “왜요?”라고 묻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메모지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입술 주위로 작은 경련이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그저 포근한 시선으로 다독이듯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게 한숨을 내쉰 후, 그녀는 메모지의 내용을 이어서 읽어갔다.
“나는 문어입니다. 문어의 암컷은 알을 낳아서 다섯 달 이상 보호하고 있는 답니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먹이도 먹지 않고, 한 자리에서 알을 지킨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포식자가 문어를 공격해 오면 자기 다리를 잘라서 줘버린대요. 자기 다리를 내어주면서까지 잡아먹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놓고는 나중에 알이 부화되면 죽어버린다고 하네요. 요즘 문어의 바보 같은 일생이 꼭 제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젊어서는 자식 키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고요, 자식들 커서 제 품을 떠나고 난 뒤로는 봉사활동을 하며 지금껏 살았어요. 제가 능력이 있어서 봉사활동을 한 건 아니고요. 봉사를 하려고 미용 자격증도 따고, 봉사에 도움된다 하면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배웠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 몸과 마음이 너무 힘이 든 거예요. 남들 위해 살다 보니 정작 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해주고 있더라고요. 먹이도 거르고, 다리 잘라서 내어주는 문어처럼 제 몸 안 아끼며 살다 보니 늙고 힘없는 노년이 되었네요. 요즘은 뭘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나 싶고, 저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슬프네요.”
그녀의 발표가 끝났지만, 정적만이 흘렀다. 글쓰기 선생이란 이름으로 그녀 앞에 선 나조차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을 상징하거나 비유할 수 있는 사물이나 대상이 있으면 한번 찾아보자는 가벼운 제안에 한 수강생은 이렇게 묵직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강의실 안에 있던 모두는 그녀의 사연이 각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파동을 잠시나마 그대로 느꼈다.
잠시 뒤, 강사인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앉아있던 이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저도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전 아이 셋을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요, 첫째가 요즘 사춘기라서 너무 날카로워요. 그 애의 시선과 말 한마디에 마음이 매일 베이고 있어요. 나를 다 내어주고 얻은 아이들인데 배신감도 들고, 저 스스로도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어요.”
“나는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했어요. 예전엔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은퇴 후엔 내가 쓸모없어진 거 같아 씁쓸합디다.”
“저는 친정어머니 병시중을 오래 했는데요. 형제들이 나중엔 제가 병시중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러고 나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 같고 형제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저만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불행한 것 같더라고요. 허망했어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준비해 온 강의 내용을 마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얄팍한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것보다 스스로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게 진짜 글쓰기의 출발이라는 생각에 사연을 계속 듣기로 했다.
“저도 갱년기가 와서 한참을 우울하게 지내다 작년에 '에잇, 이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나 하고 살자'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 다 말리는데 50대 여자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남편은 이혼하자는 거냐며 난리고, 애들도 엄마 미쳤냐고 까지 했죠. 근데 그대로 있으면 진짜 제가 우울함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달만 나를 찾지 말라고 선언하고 국토순례를 했어요. 다녀와서 용기가 생겨서 요즘은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스스로에게 묻고 배우러 다녀요. 오늘 수업에도 그래서 온 거고요.”
강의실의 모두가 맞춘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준비해 갔던 교안을 덮었다. 그리고 학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남은 과정 동안 우리 모두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함께 글로 써보도록 하죠. 아무것도 안 쓰고 싶다, 나를 들어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 그냥 놀거나 쉬러 오셔도 됩니다. 남의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잖아요? 저 역시 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가정도, 직장도 제가 없어도 잘만 굴러가던 경험을 여러 번 했거든요. 근데 제 인생은 저 스스로한테는 한 번뿐인 시간이더라고요. 결국 우리가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할 존재는 바로 저 자신이 아닐까요. 그러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진짜 나에 대해 쓰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가시죠. 저도 여러분 이야기 많이 듣고 배우고 깨우쳐 가겠습니다.”
그 강의의 원래 제목은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와 미디어 활용법’이었다. 10주 동안 자신을 홍보하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알려주겠다던 강의의 목적은 그렇게 극적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10주 동안 십여 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읽고 쓰는 글쓰기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했던 글쓰기 강의나 미디어 비평 강의와는 형식과 내용이 사뭇 달랐다. 우선, 내가 교수자로서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툭하고 질문 하나를 던지거나 그 날 생각할 거리를 칠판에 써놓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뜨개질 공방에서 각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듯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글을 읽고, 애정을 듬뿍 담아 타인의 글에 감상평을 내놓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에게 상처 주는 비평이나 비난을 하지 않았다. 공감하고, 다독이고, 혼자가 힘들면 같이 힘내자고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10주의 시간이 흐르고 종강을 하던 날,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과정이 끝난 후에도 몇 개월 동안 단체방을 만들어 궁금한 소식을 묻고 소박한 도전이라도 서로 응원의 말을 선물했다.
강연자로서 내가 경험한 최고의 강의이자, 제일 수월한 수업이었다. 5년 전, 잊지 못할 가을의 추억이다.
이때의 경험 이후 글쓰기 수업만큼은 선생이 아닌 같이 쓰고 배우는 사람,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오지랖 넓은 동행자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로지 글을 계속 쓸 '용기'만 충전해주자는 목표를 가슴에 새기면서. 5년 동안 이런저런 글쓰기 모임들을 이끌며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마중물을 붓는 것이었다. 내가 건넨 마중물 한 바가지에 학인들은 저마다의 물길을 만들어 끝내 강과 바다에 이르렀다.
어느 날 동료가 물었다. 연구를 하고 자기 글을 쓰기에도 빠듯한 일정에 글쓰기 수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 역시 작가이기도 해서 글쓰기 수업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진심을 담아내야 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글쓰기 모임은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물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놀이의 시간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무의식 속으로, 때로는 타인의 삶으로 깊이 들어가 모험을 하는 이 멋진 여정을 차마 멈출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산길은 있다. 그것은 골짜기로 이어지는 위험한 내리막길이 될 수도 있고, 금방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배를 타고 깊고 컴컴한 물 위에 떠 있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다. 비유가 어떻든 글을 쓰는 일은 우아하게 활공해 들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글을 쓰는 장소가 오두막이든 침실이든 사무실이든, 글을 시작할 때에는 침묵과 공허가 아우성치는 공간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글 속으로 들어가는 안전하고 쉬운 길은 없다. 당신과 당신의 기억, 경험, 상상이 있을 뿐이다. 발가벗은 채로 말이다."
- 바바라 애버크롬비,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