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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Feb 27. 2019

나에 관한 사용설명서

자기소개서 쓰는 법


공채 시즌이 되면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방송국, 대기업, 스튜어디스, 카피라이터 등 관련 자기소개서를 수십 편 읽다 보니 어떤 자기소개서가 더 설득력 있는지, 흥미로운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는 기업이나 학교 등에 제공하는 ‘한 사람에 관한 설명서’라 할 수 있다. 읽을 독자, 즉 지원처에서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에 따라 내가 가진 여러 능력과 특성 중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상세히 설명하여 써야 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자기소개서의 항목은 어떻게 나누고, 부분별로 무엇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까?


개성 있는 형식과 내용을 원하는 곳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틀은 다음과 같다. 크게 보면 지원자의 성장 과정과 성격의 장단점, 특별한 경험이나 경력, 그리고 지원동기와 포부를 쓰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A4용지 한두 장을 채우는 비교적 짧은 글쓰기이지만 막상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첫 항목부터 쓸거리가 없거나, 혹은 너무 많은 일화 중 무엇을 골라 써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그럴 땐 글로써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도록 차근차근 항목들을 채워보자.


첫째, ‘성장 과정’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배경 또는 나만의 역사를 보여주는 항목이다.


지원자의 과거에 대해 묻는 이유는 지난날의 경험들이 현재의 모습을 설명하고, 그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부모님의 직업이나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만들어낸 일화나 환경들을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자신에 관한 정보를 나열식으로 쓰지 말고, 서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선택해 의미를 담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 분야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릴 때 산골 마을에서 자랐다는 특징이 자연 속에서 선과 면, 색을 익혔다는 차별점을 강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성격의 장단점’은 지원하는 분야에 인성이나 적성이 맞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항목이다.


우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소설이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분석한다는 마음으로 ‘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보자.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학교나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집에서 가족들을 대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 과거의 삶의 태도와 현재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를 특징짓는 단어나 문장들을 최대한 지면 위에 기록해보자. 그다음은 직업이나 지원하는 곳의 특징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성격들을 추려서 서술한다.


만약 콘텐츠를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일터가 공동 작업을 주로 하는 곳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선호하는 인재상이 달라질 것이다. 카피라이터나 구성작가와 같이 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환경에서는 창의성 못지않게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잘하는 성격을 선호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선택한 나의 성격 중, 장점을 서술할 때는 너무 자랑하듯 허세를 부리며 쓰지 않도록 유의한다. 자신의 장점을 본인이 말하는 것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인용해 서술하면 좋다. “저는 완벽주의자라 일할 때 실수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보다는 “함께 프로젝트를 한 팀원들은 저를 못 말리는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하곤 합니다”라는 문장이 더 객관적이고 신뢰도가 높게 보인다.


단점을 서술할 때는 가능하면 개선 가능한 범위의 특성을 제시한다. 영업부에 가고 싶은데 소심한 성격만을 단점으로 제시한다면 채용 담당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원하는 직업군에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동안 소심함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거나 소심한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읽는 재주가 있다는 등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좋을 것이다.


셋째, ‘과거의 이력이나 인생에서 특별했던 경험’을 적는 항목에서는 과정 중심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무엇을 했는지 결과를 말하기보다는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를 스토리텔링하고 경험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나 상황에서 자신이 얻은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를 서술한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면, 어느 나라에 얼마나 있었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낯선 나라에서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른 나라 친구들과 생활하며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글로 보여주는 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이다.


가끔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면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아서 두서없이 자신이 했던 활동들을 죽 벌여 놓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겪었던 일들과 지원처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연결 짓자.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펼친 대외 활동들을 열거하는 것보다 단 한 번 비행기를 탔던 강렬한 기억이나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들려주는 것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마지막은 이 직업을 희망하게 된 ‘동기나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항목’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자신의 꿈이나 앞으로의 다짐을 서술해야 하므로 실제 글을 쓰다 보면 가장 막막한 구간이기도 하다. ‘열심히’, ‘성실히’와 같은 뻔한 부사나 ‘최고의 일꾼’, ‘노력하는 인재’ 등의 낯간지러운 표현들로 채워지기 쉽다.


자기소개서를 마무리하며 강렬하고 좋은 인상을 주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먼저 지원하는 분야에 관한 자료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특정 학교나 기업, 단체가 지향하는 바나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인재상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등을 찾아보거나 기사 검색을 통해 중점 사업이나 이슈가 무엇인지 챙겨보자. 그저 잘하겠다는 막연한 표현 대신, 자료조사를 통해 찾은 단어나 문장을 활용하여 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그러면 채용 담당자도 지원자와 함께할 내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항목을 모두 채웠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바로 퇴고다.


글을 다듬는 과정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맞춤법 같은 작은 실수가 글쓴이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소를 다 쓴 후,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보자. 자신이 썼지만 읽으면서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색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문장이 길어졌다면 부사나 접속사같이 꼭 필요하지 않은 단어들을 지워 간결한 문장으로 만든다. 한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에 동그라미를 쳐서 둘의 호응을 맞추어보는 것도 비문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소리 내어 크게 읽으면 눈으로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들을 찾을 수 있고, 면접에 대비해 말하기 연습도 미리 해볼 수 있다.


설명서의 영어 표현인 ‘manual’은 ‘손의, 손으로 하는, 손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루뭉술하고 뜬구름 잡는 사용법이 아니라, 그 뜻 그대로 손에 잡힐 듯 명쾌하면서도 상세한 안내서가 좋은 매뉴얼이 아닐까? 자기소개서도 그렇다. “저를 뽑아주세요”라는 단순한 외침을 담은 글이 아니라, “나는 이런 인재입니다”라고 명확하고 자세한 안내를 해주는 글이 매력 있고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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