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글을 쓰기 위해 나만의 작업공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 전원을 켜고 핸드폰에서 음악을 튼 후 커피 한잔을 내린다. 쓸 거리가 밀려있어도 곧장 책상 앞으로 달려가지 않고 창 옆에 둔 작은 의자에 커피를 들고 앉는다. 그날 마시는 커피의 첫 모금을 평온한 마음 상태에서 제대로 음미하고 싶다.
이때 선택하는 음악은 반드시 가요여야 한다. 글쓰기가 한창일 때 듣는 음악은 피아노나 첼로 연주곡이지만 글쓰기 전 창작 욕구에 작은 불씨를 던지고 우리말이 주는 고유의 정서와 리듬감을 충전하기 위해서는 가요가 제격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요들은 매번 새로운 영감을 주고 사색의 길로 나를 이끈다. 요즘 빠져있는 가요는 김동률의 <노래>, 아이유의 <Love poem>, 그리고 적재의 <나를 찾아서>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세 곡의 노래를 연이어 듣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나의 이런 습관 때문에 글쓰기 수업에서도 종종 가요를 가져와 글 재료로 삼는다. 세대와 장르에 상관없이 가사에서 생각할 거리, 글 쓸 용기를 주는 가요들을 선택한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로 부모의 삶에 대해 써보기도 하고,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들으며 그리운 장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중 노랫말을 찬찬히 읽어주면 학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바로 펜을 잡게 만드는 곡들이 있는데 주로 가수 신해철의 곡이다. 그의 노래에서 가사만 따로 떼어내어 낭독해보면 신해철이 왜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는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일상으로의 초대> 속에서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라는 노랫말을 곱씹으며, 마흔이 넘어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자신의 삶에서 활력을 주는 존재가 된 ‘그림’이 가사 속 ‘너’ 같다는 학인이 있었다. 노년의 여성은 <민물장어의 꿈>을 듣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이제는 마음조차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부모로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쳐 함께 있던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나 역시 그의 노래에 많은 빚을 졌다. <날아라 병아리>는 일곱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살던 나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해 준 노래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글 쓰는 자유인으로 살자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잡아주는 곡이다.
나의 글쓰기 모임에서 가요는 종이 위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창작의 열망을 증폭시키는 스피커이고,
신해철은 위대한 글감인 일상으로 우리를 초대해 삶과 죽음, 꿈에 대해 읊조리게 도와주는 선배 작가이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