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 인생 중반부를 기획하기 좋은 나이
먼지 덮인 옛 자료들을 정리하다 십 대 때 쓴 일기장을 마주했다.
매일 쓴 기록은 아니지만, 기분과 결심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일기를 썼던 모양이다. 일기장에는 짝사랑하는 소년에게 수줍게 마음을 건네고 설레며 잠 못 이루는 풋풋한 모습부터 짝사랑에게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듣고 베갯잇이 젖을 때까지 울고 난 후 절절한 심정으로 써 내려간 시도 있었다.
분명 내 기억들인데 마치 처음 본 청소년 소설의 한 장면처럼 흥미진진해 일기장을 덮지 못하고 내달리며 읽었다. 그러다 ‘인생 기획’이라는 장대한 제목의 글 앞에 멈춰 섰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소녀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지만 가정 형편상 서울로 대학을 가기 어려울 테니 대학은 취업이 잘 되는 과로 가자는 결연한 선언을 하고 있었다.(당시 방송작가는 생소한 직업이었고 정보가 없던 소녀는 문예창작학과를 가야만 방송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처한 환경 때문에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꿈꾸는 삶의 방향만 잃지 않으면 괜찮다는, 제법 대견한 생각들을 이어갔다.
이어서 앞으로의 삶 전체를 전망하며 ‘인생 기획’을 그렸다. 20대에는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 30대 때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교수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40세가 되면 경험과 지식을 담은 책 한 권을 써서 후배들에게는 지혜를 전달하고 나에게는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이 대목에 한참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치 예언처럼 내가 그동안 글과 똑 닮은 삶을 살아서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방송국에서 일당 만 원짜리 리포터 겸 자료조사로 일을 시작한 후,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여러 차례 옮겼지만 일을 쉰 적은 없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를 하면서도 특집 방송을 집필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에는 시간강사로 교단에 설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에게 ‘교수님’으로 불릴 수 있었고 방송작가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나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간혹 선물할 만큼의 수입도 벌었다. 거짓말처럼 마흔 살 2월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해 가을에는 내 이름으로 된 첫 책을 만났다.
신기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왜 마흔 이후의 계획은 없지?’란 생각이 들었다.
십 대 때 나는 혼자 공상하기를 좋아했고 꽤 당돌한 생각을 품은 아이였다. 책에서 만난 닮고 싶은 작가나 예술가들은 유독 자살을 택하거나 요절한 인물이 많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어서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나는, 내 인생이 활짝 꽃 피우는 순간 생을 마감하면 멋지겠다는 꿈을 꾸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는 마흔 이전이거나 그 언저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인생을 기획하면서 40대 이후의 삶을 설계하지 않은 이유는.
어느덧 나는 십 대 때 미처 가늠하지 못했던 나이, 마흔 중반이 되었다.
소녀 시절 일기장을 마주한 후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0년 동안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그러는 사이 나의 청춘은 저물었고 이제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주름과 나잇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십 대 때 상상하던 생의 마지막 모습을 실천하기에는 겁이 많고 미련은 더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 버렸다. 나는 천재 작가도, 세상을 놀라게 할 예술가로서 자질도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버렸으니 꽃같이 질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이제 어쩐다! 남은 생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면 좋단 말인가!
며칠을 멍하게 있다가 새 일기장을 펼쳤다. 사십 대는 다시 ‘인생 기획’을 하기에 참 좋은 시절이란 생각을 하면서.
요즘은 생각나는 대로 중년과 노년에 이루고 싶은 꿈들이 무엇인지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소개할 만한 그럴듯한 목표는 없다. 오히려 너무 보잘것없거나 소박한 일들이라 써놓고도 ‘에게, 겨우 이거?’라고 되묻곤 한다.
‘하루 한 끼는 제대로 챙겨 먹는 일상’, ‘규칙적인 운동으로 만드는 건강한 몸’,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꼭 혼자 있을 여유’ 같이 목표라고 부르기에는 하찮은 일들을 목록에 썼다. 목록을 나열한 후, 자잘한 계획들을 묶을 수 있는 내 삶의 무게 추, 중심 가치가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중년과 노년의 삶에서 나는 ‘읽고 쓰고 사고하는 자유’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흔넷의 나는 무엇이 되기를 바라기 보다,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하고 있음을 알았다. 찬란한 순간에 불새처럼 활활 타오르는 생이 아니라, 등잔에 담긴 나약한 불씨라도 잘 보살펴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밝힐 수 있는 생을 꿈꾸고 있다.
새 일기장을 채우며 요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그동안 멀게만 느꼈던 50대, 60대, 그 이후 노년의 삶을 가늠하며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는 중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지금 쓴 일기장을 다시 펼쳤을 때, 그때도 먼지 속에서 예언과도 같은 나의 문장들을 만나 흐뭇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