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될 수 있잖아요!
얼마 전 큰 조카가 취직을 했다. 첫 월급을 탔다며 숙모인 나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평소 갖고 싶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고 파는 곳도 잘 없어서 사지 못했던 책인데 오프라인 서점을 뒤져서 직접 찾아왔다며 책을 내밀었다. 선물을 받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책은 두 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웠는데, 책의 무게가 마치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조카가 받은 월급의 무게 같았다. 월급을 받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직장과 가정에서 책임감이라는 추를 어깨에 하나씩 더 짊어지겠지 싶었다.
조카에게 선물을 받고 어른의 삶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사전에서 어른의 뜻을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풀이해 놓았으니 조카는 이제 갓 어른이 된 셈이다. 대학에서 만나는 20대의 제자들은 가끔 내게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외친다. 그들에게는 어른이 해야 할 일 임무와 의무들이 첩첩이 쌓여있는 일상을 살거나 뭔가 꽉 막혀있고 자유롭지 않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는가 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내 몸인데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 생활을 이어갔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나의 욕심과 욕망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먼저 염두에 두고 여러 선택지들을 골랐다. 하지만 남들이 중년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문득 돌아보니 어른의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어른은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의 굴레를 벗어던지면 말이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고, 어른도 포기할 수 있고, 어른도 자유로워도 된다고 생각을 바꾸면 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나에게 존경하는 어른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몇몇 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데 그 어른들이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쟁취한 분들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어른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늘 티격태격하시는데 아프거나 힘들 때면 두 손을 맞잡고 서로를 마주 보며 부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시부모님, 매일 걱정거리가 넘쳐나서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면 결국 좋은 소리를 못 듣고 끊으면서도 또 그렇게 사랑이 넘쳤기에 혼자 몸으로 엄마, 아빠의 자리를 모두 채워주었던 친정엄마, 일로 만난 사이지만 권위보다는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솔직히 들려주며 나에게 조언도, 격려도 늘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작가 선배, 선생님들까지.
이들은 나에게 완전무결하지 않아도 꽤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녀 계획은 없지만 어른 계획은 열심히 세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