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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
by 김주미 Oct 05. 2017

방송작가의 음악 활용법

감정의 스위치를 켜자!

   

가끔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러 간다.


강의 준비를 할 때 나는 강의 장소나 수강자들의 특성을 많이 고려하는 편이다. 그래서 비슷한 주제라도 똑같은 내용, 똑같은 형식으로 강의가 흘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주제가 무엇이든, 강의 마지막에 빼놓지 않는 시간이 있다. 바로, 메모나 편지 등 간단한 글을 쓰는 순서이다. 한, 두 시간의 짧은 강의라도 수강자들이 들은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마음과 생각 속에 저장하려면 글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그런데 한 줄 평이나 간단한 메모라도, 글 쓰는 자체가 두려운 사람들이 꽤 있다. 글을 써보라고 하면 인상부터 찌푸리거나 몰래 나가려고 눈치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며칠 전에도 인문학 특강을 마치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도록 했다. ‘자기 평가’를 해보는 의미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칭찬해주고 싶은 점, 자신의 긍정적인 점 등을 쓰게 했는데 많은 분들이 시작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그 순간, 평소 내가 즐겨 듣는 피아노 경음악을 잔잔히 틀었다. 음악을 틀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5분 정도 기다렸더니, 마법처럼 수강생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뭔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분들에게 피아노 연주곡이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로 감정을 전환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 것이다.    


음악이 특별한 분위기나 정서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은 방송 스토리텔링을 하며 체득한 것이다.     


한창때 나는 세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기도 했다. 매주 고정으로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축제 기간을 맞아 특집 쇼오락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고, 일 년 동안 준비한 휴먼 다큐멘터리의 막바지 작업도 한창이었다. 이 시기에는 하루 중 세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며 기획안과 구성안, 대본 쓰기를 번갈아가며 해야 했다. 같은 방송 글이지만 프로그램 장르에 따라, 그리고 글을 읽을 내레이터나 진행자에 따라 문체가 달라져야 했다. 이때, 음악은 프로그램의 색깔에 맞게 문체를 변환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사프로그램의 구성안을 쓰기 전에는, 무거운 분위기의 교향곡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냉철하면서도 진지한 어투로 질문과 대답을 이어간다. 쇼오락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요즘 유행하는 K-POP 등을 들으며 곡의 배치나 무대의 분위기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휴먼 다큐멘터리 대본 작업 전에는 피아노나 클래식 기타 연주곡을 들으며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인터뷰나 일상의 풍경에 몰입하도록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글을 쓰기 전, 음악을 듣는 것은 이렇게 나의 오랜 습관이 되었다. 최근엔 학문적 글쓰기나 강의를 위한 글쓰기를 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도 음악에 기대면 쉽게 상황별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장소가 어디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잠시 감상하고 있으면 주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쳐지면서 나만의 작업실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음악은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존재다.    


그런데 음악의 마법이 매번 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방송 스토리텔링에서 음악을 자칫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 예전에 시사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배경음악 때문에 PD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에 관한 내용을 다룬 시사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PD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인터뷰 장면에 우울하고 처량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을 넣자고 했고, 나는 그 또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며 담담히 현장음 그대로 인터뷰를 담자고 했다. 결국 나는 PD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방송을 통해 확인한 그 장면은 ‘신파’이며, 감정 과잉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을 본 후 촬영에 응해준 이주노동자들은 우리가 제시한 메시지에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신들을 불쌍하게 다룬 것 같아 아쉽다는 평을 전했다.      


이외에도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프로그램 분위기와 맞지 않은 선곡으로 영상과 음악이 따로 노는 느낌을 줄 때도 있고, 음악의 볼륨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인터뷰보다 크게 들려 주객이 전도됐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다. ‘과유불급’은 방송 스토리텔링의 음악 활용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주위의 공기와 기분을 바꾸어 분위기에 쉽게 젖어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몰입시키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음악이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잘 휘둘러보길 권한다. 더불어, 보다 다양한 음악을 편견 없이 음미하고 이해하며 즐기다 보면, 분명 음악은 글쟁이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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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스토리 연구소> 김주미 소장의 브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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