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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Nov 01. 2020

최적의 집필실을 찾아서

꿈의 공간에 도착했지만


당신은 늘 바라던 꿈의 공간이 있는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작가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갖는 의미를 단호히 외쳤단 사실을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이라면 나만의 서재나 집필실을 꿈꾸곤 한다.


나 역시 글 쓰는 공간에 대한 갈망이 오랫동안 있었다. 방송작가 시절, 한 방송사에 속해 있었지만 직원이 아니었기에 나의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책상은 있었지만,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개편 때가 되면 프로그램 존폐나 이동 여부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자리였다. 예민한 개편 철이 되면 작가들끼리 “내일 오면 책상 빼놓는 거 아냐?”라는 웃픈 농담을 하며 퇴근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집 안에 꼭 있었으면 하는 공간이 있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나만의 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집에 서재가 있으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마 많은 작가들이 집에서 작업할 수 없다고 외치는 이유가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집 안에서는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나를 기다리는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밟혔다. 방해꾼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신경을 자극하고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집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업무를 보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서재가 있어도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한 단체에서 창작자에게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에 작업실을 지원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망설임 없이 서류를 접수했고 한 달 후 생애 처음으로 집필실을 갖게 되었다. 집필실은 2인의 창작자가 함께 쓰는 구조였는데, 나의 룸메이트는 소설가였다. 두 사람의 개인 책상이 벽을 바라보며 놓여 있고 중간에는 작은 테이블을 둔 구조였다. 책상이며 기타 집기, 인터넷선까지 지원되는 그야말로 글을 쓰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꿈에 그리던 집필실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아이디어로만 머릿속을 떠다니던 뿌연 덩어리들을 창작물이라는 실체로 세상에 내보내야 마땅했다. 내 방이 생기면 성적도 오르고 사생활도 보장될 것이라는 낭만적인 착각에 빠져 살던 사춘기 소년처럼, 집필실의 로망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선 집과 작업실과의 거리가 문제였다. 집을 나서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까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이동하는 날이면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지쳐서 멍하니 넋을 놓고 쉬어야 했다. 집필실이 생겼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탓에 오늘은 진짜 멋진 글을 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을 맞아야 했고 흐름이 끊긴 그날은 작업을 더 이상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옆자리 소설가도 신경 써야 했다. 그 또는 내가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면 서로 예민해져 화장실을 가는 데에도 눈치를 봤고,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걸레질을 한 횟수를 세며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였다. 한 달에 30만 원의 월세도 부담이었지만 여름엔 냉방비, 겨울엔 난방비도 만만치 않았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해서 버는 돈은 뻔한데 한 달 지출이 껑충 뛰었고 식사비에 간식비, 생활용품을 사는 비용까지 소소하게 들어갈 돈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집필실은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입주 후 1년을 겨우 채우고 짐을 챙겨 나왔다. 역시 꿈은 꿈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푸념하면서.


어느 지리학자의 책에서 공간은 '자유'를 상징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그것은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충분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글 쓰는 사람들이 꿈꾸는 '집필 공간'은 쓰고 싶은 열망이 일 때 곧바로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힘,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노트나 컴퓨터를 펼칠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글쓰기 모임에서 가끔 글을 쓰고 싶어도 혼자 있을 공간과 시간이 없다는 한탄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럼 나 역시 그랬다며 공감한 후에 조심스레 나의 의견을 말한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갖췄다고 꼭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니 내 마음의 일렁거림으로 펜을 잡지 못할 때가 더 많았고,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 카페를 돌며 옆 테이블의 세상 이야기를 글감으로 주워 담던 '유랑 작가' 시절에 쓴 글들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는 나의 경험담을 듣고 학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필실을 가져봤던 나도, 집필 공간을 꿈꾸는 학인들도 아마 여전히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내 맘대로 글 쓰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완벽하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우리가 얻으려면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 있어야만 합니다. 자유가 있어야 하고 평화가 있어야만 하지요."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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