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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an 28. 2021

글을 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난 작가였다!

슬럼프는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지난 몇 달 동안 에세이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일상과 내면에 관한 글을 쓰기가 두려웠다. 마음 저 밑에 꾹꾹 눌러 두고 있는 어둡고 습한 감정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젯밤, 한 장의 사진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방학 숙제를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컴퓨터 모니터 속 조카가 써내려 가고 있는 글이 보였다.


“우리 고모는 작가입니다.”라는 첫 문장이 눈에 띄었다.


뒤이어 “고모가 제 이야기를 넣어주신 책도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요 며칠 서늘한 기운만 서려있던 가슴과 머릿속이 조금씩 온기로 데워지는 듯했다.   


조카의 방학숙제를 살짝 훔쳐보았다.

그동안 속내를 보여준 적은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고모의 글을 조카가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기력 없이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나에게 조카의 문장은 이렇게 다시 펜을 잡을 수 있는 용기의 불씨를 던져주었다.  


지난 12월 초, 엄마의 컨디션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큰 수술을 여러 차례 견딘 후, 겨울이면 유독 체력이 떨어져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엄마였기에 이번에도 며칠 입원하면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 후로 두 달이 흘렀다. 엄마의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입원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주일에 두, 세 번 꼴로 병원을 오가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하나의 증상이 나타나 약과 주사로 겨우 누그러뜨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똬리를 틀고 있던 또 다른 증상이 등장해 엄마의 몸을 공격했다.


두 달 동안 아프기만 한 일상은 엄마 마음의 평안까지 빼앗아 갔다. 찾아가는 진료과는 달랐지만 뇌가, 청각이, 방광이 결국은 몸 곳곳이 노화되어 버렸다는 선고를 반복해서 받으며 엄마는 점차 무너져 내렸다. 기력이 없어 늘 자식들에게 부탁하여 병원을 동행하다 보니 바쁜 자식들을 괴롭히는 짐짝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겹쳐 엄마의 마음을 괴롭혔다.     


결국 어제는 이비인후과에서 스트레스와 불안 등으로 이명과 이석증이 찾아왔다는 진단을 받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새로운 진료과를 찾을 때면 다시 처음부터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 필요하면 여러 종류의 영상 촬영까지 병원에서 세, 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예사였다. 보호자로 따라나선 나까지 덩달아 아플 것만 같은 고단한 행보였다. 엄마가 그런 나의 표정과 컨디션을 놓칠 리가 없었다. 엄마는 두 달 동안 계속 자식들의 눈치를 보며 점점 위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괜찮다며, 엄마만 아프지 않으면 된다고 다독였지만 사실 나 역시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를 나가고 자영업을 하는 남편이나 동생, 올케에 비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내가 시간을 내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프리랜서인 나는 일하는 시간을 나의 의지로 조정할 수 있었고,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거절할 수 있는 경력과 여유도 있었다. 자연스레 엄마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엄마 곁에 있지 않는 날에도 혼자 있는 엄마 걱정에 책상 앞에 늘 전화기를 두고 벨이 울리면 곧바로 반응하는 긴장 속에 일상을 보냈다. 평소 베개에 머리를 닿고 3초면 잠이 들던 나였지만, 지난 두 달 동안은 엄마 걱정에 깊은 잠을 자기 어려웠고 매일 꿈에서도 힘겨운 상황들만 이어졌다.  


어쩌다 엄마가 괜찮은 날이면 짬을 내서 글을 쓰겠다고 의자에 앉아도 좀처럼 눈 앞의 빈 공간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머리는 멍해지고, 손과 발은 중력을 따라 아래로 처지기만 했다. 평소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잡은 후 온전히 몰입해야 글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글쓰기에 필요한 생각의 근육들이 약해져 버렸는지 문장을 이어가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글쓰기를 포기한 채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향하곤 했다.


그러다 어젯밤 조카의 글을 보고 나도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조금씩 솟아올랐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아팠던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글을 써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서랍에 여러 글감들을 모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를 받으러 들어간 엄마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잠 못 이루는 밤엔 침대 모퉁이에 웅크리고 누워서,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다 우연히 고개 들어 마주한 하늘을 보며 나는 핸드폰이나 메모장에 그 찰나의 단어들을 남기곤 했다.


그렇다! 글을 계속 쓰지 않는다고 작가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삶을 치열히 살아내는 순간마다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절망, 잠깐의 위안과 기쁨 같은 작은 감정들과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속 일화들을 켜켜이 소중히 포개어 놓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자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내일도 엄마와 병원에 동행해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고, 검사 결과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또 고약한 상황에 저당 잡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실망스럽거나 슬프지는 않다. 고단함 속에서도 엄마와 나는 조카의 귀여운 사진을 보거나 주위의 정겨운 풍경을 보며 순간순간 웃을 것이고, ‘나는 작가다’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작가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억들을 가슴 한쪽에 저장해 놓을 테니까.


다른 해보다 조금 긴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나와 엄마, 우리 가족에게 곧 다가올 봄은 더 따스하고 눈부시기를 기도해본다. 그 봄날엔 행복한 진심을 담아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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