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말을 배우고 싶다

by 별하열음

생각을 많이 하는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로 글을 쓰거나 일기를 쓴다. 때로는 메모로 끄적이기도 하고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나머지 생각들은 생각으로 머물다가 흩어져 사라진다. 그리고 다른 생각들이 새롭게 다가와 나의 머릿속을 채운다. 모든 기억과 생각을 붙잡아 둘 수 없어 간직하고 싶은 기억과 생각들은 기록을 한다. 다시금 곱씹고 싶은 것들. 훗날 발견한 나의 기록들은 기억을 회상시키고 다시금 생각의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잊고 있던 어떠한 것을 깨달았을 때 다시 그 기록은 또 다른 기록으로 이어진다.

생각의 생각을 하고 기록의 기록을 하고. 유연하게 흘러가서 내 것이 되는 것들이 쌓이는 만족감이 좋다. 차곡차곡 쌓이는 나의 것들. 나는 나만의 것을 좋아한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기록, 나만의 느낌, 나만의 시간, 나만의 패션. 그만큼 나는 나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래서 자기 세계가 강하고 고집스럽다는 말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고집스럽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서 좋지 않게 표현이 돼서 그렇지 고집의 뜻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틴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자기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남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고 휘둘리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점에서는 휘둘려지지 않는 상대를 고집스럽다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를 나의 생각대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할 때 내 뜻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고집이 세다' 라고 표현한다. 고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몰라서 그렇지 누구나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갖고 있다.

또 하나 비슷한 경우의 말은 ‘자존심이 강하다’라는 말이다. 내가 나를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 누군가 나를 평가했던 말 ‘너는 자존심이 강하잖아’였다. 보통은 그 말을 사람들은 칭찬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하다’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기에 대한 존중이 크고, 그로 인해 자신이 무시당하거나 낮춰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본능과도 같은 거다. 고집과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것이 타인들에 비해 좀 더 도드라져 보이거나 타협하지 않으려는 성미 때문에 강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다고 평가하는 것 역시 남을 휘두르려는 마음이 바탕에 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심리로 굳이 속으로 생각해도 되는 표현을 겉으로 ‘너는 이렇잖아’라고 말한다. 실제로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거나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 할 때 이런 평가를 받았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자기 세계도 고집도 자존심도 강한 것. 이 세 가지는 어쩌면 같은 결을 가지고 있고 함께 가야 하는 구성원일지 모른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려면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타격을 입히려고 하면 지켜야 하니 말이다. 나는 남이 나를 바꾸려는 의견을 듣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좋으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만족스러우면 된다는 사람이다. 암환자가 되고 더 마이웨이의 삶이 되어가고 있다. 내 남은 생을 휘둘리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자라는 마음이 더 커져서 그렇다. 영원하지 않은 짧은 생을 내 뜻대로 살고자 해도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남의 평가 따위는 반사하고 싶다. 넣어둬 사양할게라고. 블랙핑크 제니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It's my life' 이것은 나의 인생이니까. 물론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왈가왈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의 인생이 존중받고 싶듯이 상대도 그럴 테니까. 그래서 요즈음은 타인에 대해 쓸데없는 참견이나 걱정 섞인 말을 하고 싶을 때면 말을 아낀다. 예전에는 아는 지식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했었는데 암환자가 되고 나 자신도 돌보지 못했으면서 누가 누구보고 뭐라고 하나 싶어 나나 잘하자하며 말을 아낀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인생은 그 사람의 권한이다. 단지 좋은 방향으로 길라잡이를 해 줄 뿐이지 내 스타일대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남을 휘두르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바라볼까. ‘너의 생각은 그렇구나. 그럼 너의 생각대로 해’ ‘너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너는 자존감이 높구나’ ‘너는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개성이 있네’라고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까. 그것은 장점으로 보느냐 단점으로 보느냐의 시각 차이인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단점으로 보는 사람들의 말로 들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왜 나에게 저런 말을 하지? 나는 고집스럽지 않다고 자존심이 강하지 않다고 오랫동안 타인의 말을 부정했다. 아마 누군가 ‘너는 자존감이 높구나’ ‘너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네’ ‘너는 너만의 세계가 있구나’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나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아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하며 나를 제대로 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듣기 어려운 말들이지만 잠시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았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말을 배우고 또 사용한다. 말이란 것도 생각처럼 흐르고 흘러가 누군가의 귓가에 닿게 하고 그것이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고집이 세다’ ‘자존심이 강하네’ ‘너는 유별나’ ‘남들처럼 살아야지’ '성격이 강하다' '드세다' 등등 외에도 많은 말을 듣고 배웠다. 그리고 그 배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한다. 이 말들을 나열해 놓고 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이기지 못할 존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 아니면 본능적으로 강해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사람을 존중하는 말과 생채기 내지 않는 말들을 듣고 살았다면 내가 배운 말들은 어떠했을까 생각한다. 나의 입으로 나가는 말들이 내가 그동안 수없이 듣고 살았던 말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나는 좋은 말들을 많이 듣지 못하고 살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주 짜증이 섞여 있고 때로는 화가 나 있는 말들을 하며 습관적으로 감정을 드러냈고 남을 비난하는 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핀잔하는 말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내뱉으며 살았다. 내가 살면서 해왔던 모든 말들이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고 누군가 배우는 말이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 내 말을 들어달라며 많은 말들을 했고 상대방은 굳이 듣기 싫은 말이었을 텐데 나는 말하는 것에 중독된 사람처럼 많은 말들을 했고 많은 참견을 했다. 그런 면에서 암환자가 된 지금은 고립 생활 중이라 수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가족과 보내는 짧은 시간 외에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말을 할 사람도 참견할 사람도 비난할 사람도 없다. 말을 할 일이 없다. 그래서 평온하다. 나의 생각에 머무는 이야기를 이제는 일기와 글쓰기에 다 쏟아붓는다. 글은 내가 어떠한 말을 하는지 볼 수 있고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다시 주워 담아 고칠 수 없고 흘러간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다 기억할 수 없다. 나는 기억하지 못할 말들이 누군가의 기억에는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니 말은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들은 나의 잠재의식에도 자리 잡는다.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말들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까지 영향을 끼친다. 내가 한 무수히 많은 말들과 살면서 들었던 말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나를 건강하게 하는 말들을 하고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를 해롭게 하는 말들을 했고 내게 해로운 말들을 많이도 들었다. 그것들을 정화시켜 치유하고 싶다. 사람을 무해하게 만드는 말들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무해한 말들을 배우고 싶다. 좋은 말들은 나를 건강하게 하고 생채기 내지 않으며 나를 부정하지 않게 한다. 이제는 아무 말이나 듣지 않고 아무 말이나 말하지 않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해한 말을 접해보지 못해 현재의 나는 무해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단어씩 한 문장씩이라도 나에게 무해한 말을 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을 곱씹을 수 있도록 기록해 두어야겠다. 그 기록들이 또 다른 기록이 되어 무해한 말들을 전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무해한 말들이 차곡 차곡 쌓여 또 하나의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03화나를 소모하며 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