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항암이 끝났을 무렵 눈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 보였던 시야의 글자들이 흐리게 보였다. 갑자기 눈이 왜 이러지? 항암 부작용으로 백내장이 생기기도 해서 눈이 안 좋아질 수 있다고도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제 노안이 오는 건가? 하며 한동안 시력을 신경 쓰며 보냈다. 한번 안과를 가거나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도서관에서 <스마트 폰 노안>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스마트 폰 노안은 일반 노안과 다르다고 했다. 자신이 스마트폰 노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며칠 동안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지냈을 때 시력이 돌아오는지를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2,3일 정도 꼭 봐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멀리 했다. 그랬더니 흐려졌던 시야가 다시 돌아오고 잘 보이지 않았던 글자도 다시 보였다. 나는 스마트폰 노안이 증상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스마트 폰을 많이 보면 이런 현상이 생기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당시 스마트폰을 많이 보기는 했다. 항암하고 기력은 없지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방 안에서 쉬면서 하루 종일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스마트폰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 그 여파가 그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독서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눈을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각심이 생겼고 스마트폰 거리 두기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전에도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을 듣고는 스마트폰을 멀리 해보려고 했지만 눈에 띄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실천은 부진했다. 이제는 나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과 거리 두기를 할 요량으로 스마트폰 파우치를 쓰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파우치 안에 넣어 두고 일정 시간 동안 꺼내 보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 파우치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스마트폰을 잠시 가둬 놓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어떤 것이 마땅할까를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이 아주 쏙 들어가는 네모난 크기의 ‘핑크판다’ 파우치를 찾아냈다. 아끼는 핑크판다라서 파우치의 지퍼가 고장 났는데도 나의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왕이면 이쁘고 귀여운 것에 담아 두면 좋으니까 이것으로 정했다. 지퍼는 고장 났지만 스마트폰은 아주 딱 들어가니 상관없었다. 이것은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 보지 않겠다는 나와의 다짐이자 약속이다.
이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이번에 처음으로 온라인 독서와 필사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게 되면서이다. 한 권의 책을 독서하고 매일의 필사 습관을 들이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느리게 읽고 느리게 쓰는 시간 속에서 여유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 독서와 필사에 몰입하는 시간을 온전히 느꼈으면 했다. 그것은 내 개인의 바람이기도 했으므로 좋은 것을 함께 했으면 했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독서와 필사하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에서 멀어져 보는 것은 어떨지 권유했다. 그리고 그냥 멀어져 보라고 하면 의미가 없으므로 ‘나만의 스마트폰 파우치’를 만들어서 스마트폰을 잠시 넣어두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것은 자유이자 선택이지만 나의 독서 필사 모임이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먼저 상세내용으로 전달하고는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독서와 필사할 책을 선정하면서 나도 나만의 스마트폰 파우치를 준비한 것이다.
독서와 필사 모임의 지기이니 솔선수범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모임을 위한 독서와 필사를 할 때에 핑크판다 파우치에 스마트폰을 넣는다. ‘어? 이거 너무 좋은데?’ 이 작은 실천은 내게 큰 만족을 주었다. 파우치에 넣기만 했을 뿐인데 넣는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꺼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한 시간 반 동안의 독서와 필사하는 시간에 몰입하게 되었다. 천천히 쓰고 읽으면서 그것들을 음미했다. 평소 책 욕심이 많아서 빨리 읽고 다른 책 또 읽어야지 하는 급한 마음이 든다. 내가 늘 추구하는 독서의 방향성은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가 아니고 깊이 있는 독서이다. 그런 급한 마음이 나의 방향성을 방해하고는 하는데 이렇게 천천히 음미하며 느리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늘 꿈꾸던 ‘느린 독서’의 로망을 현실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하루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조금씩이라도 스마트폰에서 멀어져 보려는 노력으로 느낀 것은 하루는 느리고 알차게 흘러갈 수 있음을 알게 했다. ‘하는 일 없이 하루가 갔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거나 스마트폰 세상에 빠르게 돌아가는 이야기들에 정신을 빼앗겨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시간을 우리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것을 핸드폰 자체에 어플 사용 알람 설정을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SNS를 많이 하게 되니 시간을 설정해 두고 사용해 봤다. 나는 얼마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 금방 가 있고 시간을 추가해서 3시간을 설정해 두었는데 금세 3시간이 되었다며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3시간? 뭐 잘못된 거 아니야? 나 진짜 얼마 안 했는데’라고 하며 의심했지만 아마 밤 12시가 지났을 때 자기 전에도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스마트폰에 쓴 시간이 3시간이라고 인지를 하고 나니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수시로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들을 준다. 독서할 때, 글을 쓸 때, 산책과 운동을 할 때, 요가와 명상할 때. 이 시간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들이다. 사용하더라도 꼭 필요한 것만 쓴다. 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에는 SNS를 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 처음 혼자서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결심했던 것이 나의 온전한 여행을 즐기자였다. 스마트폰으로 교통편을 검색하고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듣는 것 외에 SNS에는 3일 동안 들어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단순한 기능 외에 사용을 줄이니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 좋은 느낌이 오래 머물러 한동안 나의 일상에만 몰입을 했다.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지 않고 나의 인생을 수시로 자랑하듯 올리지 않는 일은 내게 자유와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가져왔다. 물론 나를 걱정하는 SNS 친구들의 안부로 다시 나의 소식들을 매일 전하고 있지만 그 자유와 온전한 나의 시간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를 보내면서 이제는 의식하며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들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하더니 손에 스마트폰이 잡히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홀린 듯 계속 이것저것을 탐색하고 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탐색하고 다니는지 아마도 도파민 거리들을 찾아 나서는 것일 수도 있다. 도파민이 주는 쾌감은 늘 좋으니까. 하지만 그 쾌감은 잠시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충족거리를 찾기 위해 쓸데없이 헤매지 말고 그것에서 멀어져 보려는 노력을 나는 꾸준히 할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이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 불편해졌다. 나라는 사람을 인증하기 위해서는 이제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다양한 문화적 혜택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점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만큼 해로움을 가지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 해로움에 대한 경각심을 알면서도 무시하게 된다. 계속 몸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스마트폰은 몸에 해로운 전자파가 나오고 있고 블루라이트 빛으로 우리 눈을 혹사시키고 있으며 마약을 한 사람들의 뇌처럼 만든다는 도파민 중독도 무시하지 못한다. 불필요한 정보들에 둘러 싸여 뇌는 피로해지고 거짓된 정보들은 우리의 분별력을 흐트러 트린다. 그 해로움에서 우리는 잠시 해방될 필요가 있다. 해방을 시켜 해독이 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오늘 얼마나 스마트폰을 보았나요? 아니, 질문을 바꾸겠다. 오늘 얼마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나요? 나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