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의 인생 모토는 “암은 암이고, 내 삶은 삶이다”이다. 암환자로서 투병을 하고 내가 짊어지게 된 핸디캡들은 내게 암환자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앞으로 5년 동안 한 달에 한번 주사도 맞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는데 직장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부터 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먹을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 참고 살지? 재발, 전이되면 어떻게 하지? 호르몬 억제제 부작용으로 관절이랑 근육이 너무 아파서 기존에 하던 일은 못할 것 같은데.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심장도 안 좋아지고 폐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데 쩜쩜.... 상상력이 풍부한 것은 이럴 때 해롭다. 앞으로 벌어지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말이다. 잘 지내다가도 예약일에 진료를 보러 가면 나는 영락없는 암환자가 된다. 마지막 항암이 끝나고 회복기가 지난 시점부터는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기 때문에 날아갈 것 같았고 새 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조금 더 많이 걸을 수 있었고 도서관에도 가고 카페도 가고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갔기에 내가 암환자인 것을 망각하다가도 병원에만 가면 다시금 '맞다 나 암환자였지'하고 상기시켰다. 약 6개월 정도는 유방암 환자의 적응 기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적응하는 시간. 새로운 치료에 익숙해져야 하고 치료에 뒤따르는 부작용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5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류시화 님의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는가> 책에서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의 자아 이미지는 다른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사고나 병으로 몸에 장애를 갖는 순간 자신을 장애인으로 여기며, ‘장애인’이라는 고정 명사와 하나가 된다. 암이 걸린 것이 확인되는 순간 자신을 암환자와 동일시하며, 암환자로 살다가 암환자로 생을 마친다. 그것이 암에 걸리는 일보다 더 불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동일시된 그 ‘암환자’가 매 순간 펼쳐지는 존재의 다른 가능성들을 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라는 글은 내가 평생 암환자로만 살아갈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구나를 그리고 내게 암환자로서의 한계를 긋고 있었구나 깨닫게 했다.
암환자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살기 위해서는 치료에 충실해야 하고 건강을 챙기는 일들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내 삶에 벌어진 일부일 뿐이지 내 삶의 전부일 수 없는 것인데 나는 내게 암환자의 타이틀을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을 바로 잡았다. 내가 언제 죽더라도 나는 암환자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굴곡진 삶에서 너무나 많이 우울했고 슬퍼하며 살았다. 그래서 암환자가 된 나에게 나는 너무 미안했다. 인생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선택들을 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아파하기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면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할 것 같았다. 오늘을 잘 살다 간 영혼이 되고 싶었다. 죽어서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내면에 채운 것들은 영혼이 기억하고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언제 죽더라도 풍요롭게 살다 간 영혼이고 싶다. 그러면 이 인생 잘 살다가 간다고 후회 없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암환자이지만 암환자로서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여해 오고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할 수 없을 거라고 그저 취미라고만 미뤄왔던 내가 쓴 시와 글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어 나의 발자취를 남기고 작가의 꿈을 이루기로 했다. 내게 나중이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은 당장 하겠다고 다짐했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기로 했다. 유명세를 떨친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시와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도전이면 충분하다. 나의 영혼은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에 열정을 쏟았던 사람임을 기억할 테니 이제는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다. 잘했냐 못했냐의 평가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죽음이라는 그림자 속에 속하고 보니 얼마 큼을 가졌고 잘살고 못살고 잘했고 못했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죽으면 그 모든 것은 리셋이 된다. 이 땅에서는 불공평했던 것들이 그래서 남들처럼 안 살면 불행했던 삶이 죽음 앞에서는 공평하다. 웨인 다이어의 책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처럼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를 것이다. 웨인 다이어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늘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보내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 영원하지 않은 삶에 필요한 답과 방식은 하나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 우리 눈앞에, 코앞에, 발밑에 있는 ‘죽음’을 기억할 때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은 나의 인생 모토이다.
현재를 잘 살아가기 위해 암환자로서 감당해야 할 것들은 감당하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로 했다. 잃어버린 것에 집중하기보다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로지 오늘을 잘 살아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며 살고자 한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써왔던 시들을 정리하고 준비해서 시공모전에 처음으로 응모를 했고 한 달 전에는 부산으로 혼자 여행도 다녀왔다. 항암 할 때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물놀이도 혼자 워터파크 가서 신나게 놀았다. 카메라 들고 다니며 좋아하는 곳들을 사진도 찍고 봄에 핀 벚꽃을 매일매일 즐기고 자연을 벗 삼은 산책도 한다. 도서관에 책 대여해서 읽고 반납하는 재미를 붙여서 독서량도 늘었다. 웹소설 작가에도 도전하겠다며 웹소설 작가 강의도 들었고 민간 자격증에도 합격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을 에세이 책으로 내보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자 계획이다. 한번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용기도 생겨 다음 여행지도 계획한다.
암환자이기 전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죽는 선택이 아닌 나는 건강하게 잘 살겠다에 중점을 두며 삶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그렇게 삶의 방향성을 바꾸고 오늘을 잘 살아가니 내가 언제 죽을지 암이 재발 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암환자로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고 암담해하던 일들은 씻은 듯 사라졌다. 앞으로의 일은 모른다. 내가 살고 죽는 것도 암이 재발 전이 되는 것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겸허히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지니고 싶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최선을 다했는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지금은 지금만 보고 살고 싶다. 나의 소중한 오늘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불필요한 것들로 나를 채우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에는 내게 남은 생은 아주 소중하고 아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