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 속에 오래 머물며 살자

by 별하열음

올해 초에 넷플릭스에서 ‘멜로 무비’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최우식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라서 나오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나중에 드라마를 다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멜로 무비’는 내가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작가님이 쓴 드라마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내레이션과 배우들이 하는 대사의 느낌이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작가님의 작품이라서 그리고 최우식 배우라서 더 더 좋았던 드라마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정한 이야기‘라고 정의했고 한동안 그 다정함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처음으로 ‘다정함’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정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정함이 그리운 사람처럼 나는 그것을 부러워했다.

얼마 전에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책 <다정함을 배우는 시간>도 ‘다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면서 선택하게 된 책이었다. 제목처럼 다정함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함을 배우는 시간이라니 제목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성우들이 들려주는 <다정함을 배우는 시간>을 라디오처럼 들었다. 이 책은 여러 편의 다정한 이야기들을 여러 명의 작가들이 단편으로 쓴 작품이다.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도 ’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정함‘이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정함이란 우리 일상에 소소하게 스며들어 있는 작고 작은 것이란 것을. 잊고 있거나 의식하지 못해서 ‘다정함’이란 것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다정함의 순간들’을 오래 간직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오디오북으로 들은 이 책에서 나는 다정함을 배웠다. 세 잎 클러버 속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는 것처럼 다정함을 특별하게만 여겼는데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매일의 것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 <핑계고>는 내가 즐겨보는 채널이다. 유재석 님의 유튜브로 보통은 모여서 수다 떠는 영상이 올라오는데 최근에는 ‘깡촌캉스’라고 해서 의성으로 2박 3일 여행을 가는 영상이 올라왔다. 유재석, 이동욱, 남창희, 이상이. 이 네 사람이 의성으로 깡촌캉스를 떠나 여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재미도 있고 힐링도 되고 그 속에 멤버들과 같이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올라오는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지만 계획적이지 않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그들의 여행에서 묘미를 느끼기도 했다. 4주 동안 4번의 영상이 올라왔고 마지막 날에는 마치 나의 여행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쉬움과 여운이 남았다. 그들의 여행에 특별함은 없었다.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먹고 싶으면 먹으러 가고 커피 한 잔 해야지 하면서 카페를 가고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나는 이 영상들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그리고 봤는데 왜 또 보고 싶었을까를 생각했더니 ‘다정함’ 때문이었다. 지압 슬리퍼로 오래 걸으면 발에 무리가 와서 혹여 다칠까 봐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와 바꿔 신어 주는 모습이, 의성에 났던 산불을 걱정하고 수고하셨던 소방 대원 분들에게 커피를 전하는 모습이, 대게를 먹기 쉽게 하나하나 손질해 놓는 모습이, 서로에게 안마기를 해주는 모습이, 누군가의 ‘이거 해보는 거 어때요’라는 말에 ‘그래 그러자’라고 말하고 기억해 주는 모습 등등 그 속에는 너무 많은 다정함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상이 배우님에게 멤버들이 하는 말이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상이가 다정해서 그래” “맞아 상이는 다정해” “그렇지, 상이가 다정하지”. 연달아 다정함을 인정하는 말들이 나의 마음을 쿡 찌르고 갔다. 살면서 ‘다정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써 보지 못했다. 하지 않고 살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너는 다정한 사람이야’라는 말도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어서 인지 언제 써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인지 그 말은 나를 기분 좋게 했지만 생소한 말이었다. 그 생소함을 직접 말하는 사람들을 본 것에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왜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을 한 번도 인정해 보지 않았을까. 왜 ‘너는 다정해’ ‘다정한 사람이야‘라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나는 그 영상을 통해 누군가의 다정함을 표현하는 사람과 다정한 사람을 봤다. 화면 속에 보이는 이상이 배우님은 실제로 다정했다. 다정하게 말하고 다정하게 묻고 다정하게 타인의 말에 응한다.

살면서 누구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을 다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상이 배우님을 보면서 매 순간 다정하지는 못해도 자주 다정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다정함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다정하다고 다정한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가 준 다정함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사람이고 싶다.

암환자가 되고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나는 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가까운 이들부터 얼굴을 모르는 SNS 친구들 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안위를 걱정해 주고 나의 삶을 응원해 줬다. 그것은 그들이 나에게 준 다정함이었다. 조건 없이 주는 다정함이었다. 나는 그것들에 너무나 감사하며 앞으로 꼭 오래 살아서 내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하는 사람이라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교만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어떻게든 부대끼며 나누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과 사람 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중에 다정함이 속해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다정함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따뜻하게 만든다. 말랑말랑 몽글몽글하게 얼어붙었던 모든 마음을 녹인다. ‘나는 다시 살 수 있어’ ‘내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살아야지. 꼭 살아야지’ ‘건강하게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등의 생각들은 나에게 준 많은 다정함에서 나왔다. 다정함을 잊고 지냈지만 내게도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사람과 사람 간의 다정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는 잊지 않고 매일의 다정함들을 주고받으며 살자. 전에는 가까이 두지 않았던 ‘다정함’이라는 것에 시선이 머물자 매일의 일상을 살면서 소소하게 다가오는 다정함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에 감사하며 그 다정함 속에 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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