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는 시간

by 별하열음

나에게 아침 식사하기는 암환자가 되고 바뀐 습관이자 하루의 루틴 중 하나이다. 암진단을 받기 전에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오전에 공복 상태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만 마셨다. 배는 많이 고팠는데 안 먹는 것도 습관인지 무엇인가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배가 고픈 상태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점심 식사는 배고픔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배도 많이 고프고 빨리 먹고 쉬고도 싶고 때때로 점심시간을 넘겨서 일이 끝나면 시간이 촉박해서 빨리 먹어야 하거나 점심시간에도 일을 해야 했던 때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직장 생활 20년의 내공에는 밥 빨리 먹기, 멀티플레이어로 일하기, 손 빠르게 일하기 등이 있다. 내가 일했던 직종은 바쁜 일들이 대다수였으므로 뭐든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해내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오래된 직장 생활에서 무엇이든 빠르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단과 운동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문득 허겁지겁 급하게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침 식사 후에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서둘렀던 것 같다. 암투병과 함께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 시간은 충분했음에도 마치 다음 스케줄이 급하게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침 식사도 때마다 먹어야 하는 약도 서둘러 먹어야 한다는 듯 그러고 있었다.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 쓰면 되는데 이 넉넉한 시간을 두고 왜 이렇게 급하게 먹는 거지? 평소에 먹던 습관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의아해졌다. 평소에도 음식을 잘 씹지 않고 한 세 번 정도 씹으면 꿀꺽 삼킨다. 음식을 음미한다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위에 채우는 것에 중점을 둔 식사라고 할까. 나는 천천히 음미하는 법을 몰랐다. 빠르게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천천히 음미한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서두르며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왜 나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못했나 하며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빠르게에 길들여진 사람은 매사가 조급하다. 조금은 기다릴 줄 알고 조금은 제대로 보고 느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빠르게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수용하며 사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행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드러난다. 인생의 모든 면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은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긴 음식과 급하게 먹은 많은 음식이 위에는 부담이 되고 매사를 서두르며 전전긍긍하는 사람의 마음이 평화롭겠는가. 마음의 평화는 느긋함에서 온다. 조금은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의 나에게 여유롭게 보낼 시간은 충분하다. 필요한 것은 인생을 제대로 음미할 줄 몰랐던 나의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는 일뿐이다. ‘천천히 음미하다 ‘라는 말을 두고 깊이 사색을 했다. ‘너에게는 충분한 아침 식사 시간이 있어. 천천히 먹어도 돼’ 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급하게 먹던 아침 식사 습관을 바꿔 보기로 했다. 천천히 먹기 위해 테이블 위에 항상 두는 무지개 타이머로 30분을 맞췄다. 30분간의 여유로운 아침 식사 시간이 생긴 거다. 아침 식사로는 야채와 과일 그리고 계란을 먹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듯 오랫동안 꼭꼭 씹어 보았다. 그랬더니 당근의 맛이 온전히 느껴졌고 사과의 과즙이 달큼하게 입안에 스며들며 깊게 느껴졌다.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키위, 계란, 오이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씹으면 씹을수록 본연의 맛이 선명해진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처음 느끼는 경험처럼 신선했고 그 맛들에 매력을 알아 버렸다. 당근이 이런 맛이었나! 사과가 이렇게 맛있었나! 채소와 과일이 이렇게 맛있었다니!라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암환자가 되기 전에는 야채와 과일을 먹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채소와 과일의 맛을 알고 길들여졌다. 한번 내가 먹는 것들을 오랫동안 씹어보면 내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맛들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하루 한 끼라도 천천히 음미하는 식사 시간을 추천해 본다. 위도 마음도 편해질 테니.



그렇게 매일 천천히 음미하는 30분의 아침 식사는 명상을 하는 것처럼 좋았다. 요즈음은 아침 식사를 할 때 오디오북을 듣거나 멍하게 앉아 아침 식사에만 몰입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아침 식사에만 집중하며 혀의 감각에만 기울이는 그 시간이 좋다. 되도록 요즈음은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려고 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일기를 쓰거나 기록을 할 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지 않는다. 간혹 길을 걸을 때도 습관처럼 꽂던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고 걸을 때도 있다. 그러면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임과 자연을 고요히 느낄 수도 있다.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몰입의 순간을 즐긴다. 멀티력을 지닌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좋아했고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빠르게 여러 가지를 해내며 성취감을 느꼈던 것보다 천천히 여유롭게 하는 것들이 좋아졌다. 느슨하게 사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급 함 들은 나를 몰아세우고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들이 암환자인 내게 좋을 리 없다. 느슨하게 인생을 깊게 보고 깊게 느끼고 싶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존경하던 목사님께서 당시 20대였던 나에게 늘 강조하셨던 말씀이 있다. ‘깊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해 ‘. 깊이 있는 삶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던 20대의 나는 그 말이 무작정 좋아서 곱씹으며 살았고 살면서 매 순간 되뇌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오랫동안 갈망했던 덕분일까 마흔이 된 나는 이제야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마다 ‘깊이 있음’의 기준이 각각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깊이 있는 삶’의 방향성은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음미하면서 살고 싶다. 매사에 서두름 없이 느슨하게 살고 싶다. 느슨함 속에서 인생의 여유를 찾고 싶다. 그래서 인생을 제대로 음미하며 사는 이가 되고 싶다. 당신에게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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