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몸을 일으키려고 손부터 움직이자 손가락부터 손바닥 손목까지 뻣뻣하게 굳어서 손가락을 구부릴 수 없고 너무 아프다. 손뿐만 아니라 어깨 관절과 무릎 관절, 발목과 발바닥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면 조금씩 천천히 구분 동작을 하듯 움직여야 한다. 이 순간 나는 꼭 목각인형 같다. 발을 딛는 것도 발목에 힘을 주고 무릎을 펴내서 몸을 일으키는 일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몸에 유연함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많이 굳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잘못했다가는 어디 하나 삐끗하거나 똑! 하고 부러질 것만 같다.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걸으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발바닥도 굳어 있다 보니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너무 아파 걷기가 힘들다. 족저근막염이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침부터 고행이다. 그렇게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면 몸은 반정도는 유연성을 찾아 움직일 수 있다. 이 증상은 5년 동안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 억제제의 부작용이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약을 멈추지는 않는다. 부작용을 감내하며 하루도 거르지 말고 약을 복용하고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 타입의 암환자들은 호르몬 억제제로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막는다.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막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약을 복용하면서 기본적인 부작용이 관절통, 근육통이다. 교수님이 ‘어디 불편한 곳 있나요?’ 하고 물으면 나는 몸이 너무 뻣뻣하고 몸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데워져서 땀이 난다라고 말하지만 교수님은 당연한 증상이라는 뜻을 표한다. 목표는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막아서 암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므로 이런 부작용이 몸에 나타난다는 것은 약이 효과를 잘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다. 몸에 에스트로겐 생성이 되지 않으므로 보통 폐경이 시작되는 40대 중후반에서 50대가 겪을 일을 나는 10년 앞당기어 경험하는 것이다.
아픔을 참아내며 일어나야 하니 매일 아침 인상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썹과 미간에 근육이 도드라졌다. 이것은 항암 할 때부터 도드라졌다.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자연히 얼굴이 구겨졌다. 살면서 숱하게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 많았음에도 얼굴은 구기고 살지 않았는데 이 구김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독성 항암 치료가 끝나면 호르몬 억제제 약을 복용하고 배에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 암진단과 함께 나의 암에 대해 그리고 내가 치료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유방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그렇게 모여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또 다른 치료와 변화에 적응해야 했고 나는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독성 항암이 끝나니 살 것 같았고 그것을 견뎌낸 나는 이 정도쯤은 다독이면서 살면 된다며 꽤 긍정적이었다. 마지막 4차 항암이 끝났을 때 겨울인데 더위가 많이 느껴져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집에 난방 온도가 높아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 횟수가 하루에도 여러 번이고 매일 그러다 보니 이상해서 진료 때 교수님께 물으니 항암제에도 호르몬 억제제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로 인해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하기 전부터 나의 갱년기 증상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갑자기 데워져서 땀이 나면 부채를 들고 천천히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혔다. 몸이 데워지니 따뜻하고 좋네. 누구는 일부러 사우나도 하는데 땀이 나서 노폐물도 빠지고 좋다. 이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부채질을 하다 보면 데워졌던 몸도 식고 땀도 식는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부채란 부채들은 다 꺼내서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고 가방 안에도 필수품으로 부채를 넣어 두었다. 키티 부채, 어피치 부채, 접었다 폈다 하는 꽃무늬 부채 등등 휴대용 선풍기의 사용으로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던 부채가 다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천천히 부채질을 하면 열과 함께 확 끌어올려진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왜 선비들이 부채를 들고 다녔는지를 알 것 같은 마음이다.
유방암 수술로 인한 림프부종을 막기 위해 그리고 뻣뻣한 몸을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만들어서 다른 질환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밤에는 요가를 한다. 정보를 수집하면서 오십견 증상으로 어깨가 너무 아파서 외과 진료도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더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요가를 꼬박꼬박 짧은 시간이라도 하려고 했던 이유도 있다. 이상하게도 호르몬 억제제로 인한 관절이 뻣뻣한 것과 근육통은 스트레칭과 요가를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뻣뻣했던 몸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만들려는 노력일 뿐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 버려서 뻐근하고 많이 움직이면 움직인 데로 근육통이 온다. 가방도 가볍게 들고 다녀야 하고 무거운 물건은 오래 들 수 없다. 들고 나면 팔이 뻐근하고 근육통이 금방 느껴진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호르몬 억제제로 인해서 근골격계가 민감해져서 그렇단다. 그래서 운동도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되는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앉아 있다가도 자세를 자주 바꿔 줘야 한다. 장시간 앉아 있으면 앉아 있을수록 몸은 굳어져 있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일어서려고 하면 또다시 걷지 못할 정도의 통증과 뻣뻣함을 감내해야 한다. 한 번은 카페에서 책 보고 다이어리 쓰느라 장시간 앉아 있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이 굳어 있어서 휘청거렸다. 할머니들이 그래서 앉았다가 일어서려고 하면 아이고아이고 신음을 내며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는 것이랑 할머니의 몸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겉보기에는 젊고 건강해 보이는데 할머니의 몸으로 산다. 그런데 나는 의외로 이 통증들에 의연해서 스스로에게 놀랐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했던 마음가짐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할머니들도 불편해진 몸을 이끌고 매일매일을 사니까 못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는 언제까지 일지 모를 이 불편함과 통증을 안고 나를 살게 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과 통증을 알기 전까지는 모든 치료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나로 그리고 내가 해왔던 일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내 삶은 변했고 많이 달라졌다. 이제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일을 장시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육체적 노동을 요하지 않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일반인이 아니라 암환자임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제 나의 최고의 부러움은 날씬하고 젊고 예쁨이 아니라 ‘건강함과 오랜 인생’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나의 관찰자 시점이 된 것은 ‘할머니’들이다. 어떻게 하면 저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오셨길래 그 나이까지 살 수 있는 걸까? 갱년기 이후로는 몸이 많이 불편해졌을 텐데 어떻게 견디며 사시는 걸까? 이런 생각으로 시선이 머문다. 100세 시대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말이 그런 거지 모두 다 100세를 사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는 60세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계시고 꽃다운 30대의 청년도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삶이 예측할 수 없듯이 죽음 또한 예측할 수 없다. 80, 90세를 사신 분들은 대단하신 거다. 나는 이제 그런 분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의 인생 선배이시지 않은가. 도서관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 읽었다. <책 ‘102세 할머니, 나 혼자 산다’>에서는 100세 인생을 살고 있는 할머니의 인생 철학과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한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골고루 잘 먹으며 마음을 갉아먹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몸이 불편하여 누군가에게 기댈 만도 하지만 100세가 넘는 나이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책 ‘89살 할머니도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의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를 배워 트위터를 하고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며 BTS를 좋아한다. 아침에는 규칙적으로 태극권과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매일을 보내려고 한다. 매일 8000보씩 걷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취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에게는 자신을 만드는 인생 철학과 건강한 습관이 있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건강을 위해서 부지런히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인다는 것, 건강한 식단과 건강한 마인드 그리고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있다는 것, 즐거움을 찾아 발견하고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두 책을 통해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성을 그리며 용기를 갖게 되었다.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갖고 산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을 살아가면서 견고하게 오랫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들이 지금의 할머니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할머니와 같은 몸이 되어 버린 나는 나의 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인다. 관절이 아프고 뻣뻣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걷기가 골다공증에 좋다고 해서 5km 내외되는 거리들은 걸어 다닌다. 공원에 8가지 기구 운동을 3세트씩 하며 근력과 관절의 유연성을 위해 운동을 했었고 날이 더워진 요즈음은 실내 운동으로 자유 수영권을 등록해서 킥판 잡고 발차기라도 하겠다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와 팔의 관절이 너무 아파서 정말 킥판만 잡고 발차기 밖에 하지 못했고 그래서 할머니들이 물에서 걷는 라인에 가서 나도 걸었다. 물에서 걷기 운동이 관절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나도 나의 관절을 챙기겠다며 열심히 걷고 천천히 뛰는 것을 한다. 신기하게도 무릎 관절이 부드러워졌고 걸을 때마다 아팠던 발바닥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조금만 팔을 돌려도 관절이 아파서 제대로 수영을 하지 못해 잘 되는 평영만 했는데 이제는 팔과 어깨의 관절도 많이 부드러워져서 배영도하고 자유형도 시도하게 되었다. 체력도 더 좋아졌고 그간에 운동을 해도 줄지 않던 몸무게가 조금씩 변화도 가져온다. 내가 가는 한낮의 수영 시간에는 할머니들이 많다. 아쿠아로빅과 자유 수영을 하고 물에서 걷기 운동을 즐긴다. 매일매일 부지런히 다니신다. 어떤 분들은 아쿠아로빅을 1주일 내내 하고 1주일 내내 물에서 걷기 운동하러 오신다고 했다. 수영을 다니면서 나는 그곳에서도 할머니들을 살펴본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하시고 자신만의 속도로 즐겁게 즐기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다짐을 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매일 나를 위한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고. 나도 나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겠다고 말이다.
호르몬 억제제와 주사를 맞은 지 6개월이 되었다. 이제 이 통증들에 많이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관절이 유연한 날도 있고 다시금 뻣뻣하고 아픈 날도 있다. 때로는 쭈그리고 앉지 못하는 날도 있고 어깨가 아파 상의를 벗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고 매일 걸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단지 나의 몸이 조금 불편해졌을 뿐이다. 그 불편함을 안고 견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몸이 불편해지고 나는 욕심내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선택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만족스럽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수영을 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삶을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나의 최고 목표는 이제 ‘건강함과 오랜 인생’이니까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인생철학을 염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