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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Aug 24. 2020

하는 일마다 꼬인다면

위로가 필요한 시간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 하늘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비가 올 만한 구름도 없었다. 다만 전날 저녁 비 예보 뉴스를 봤다. 기상청은 태풍과 장마에 대한 예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해마다 한 차례씩은 욕을 먹는다. 한때는 비싼 컴퓨터 사놓고 게임을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기계가 하는 예측을 사람이 판단한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그게 기술이 아닌가. 그건 그렇고.


어쨌든 잠깐 볼일 보고 돌아올 생각에 우산은 꺼낼 생각도 못 했다.


목적지 도착.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책 제목처럼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손에 우산이 들려 있다. 툭 치면 넘어질 것 같아 조심해야지 했던 일이 결국 넘어지는 일들이 내게는 잘 일어난다. 몇 번 그렇게 당했으면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잘 잊는 건지, 다른 요행을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게 인간 존재다.

준비성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비 예보가 있음을 알고 비 없는 아침부터 우산을 챙겨 들고나온 것이다. 맞을 만한지 손을 내밀어 보고 머리에 떨어지는 비의 양을 체크했다. 맞을 만 해 보인다. 몇 걸음 걷다가 판단이 이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비는 더 거세졌다. 정류장 은행나무 잎에 잠시 섰지만 몇 초 못 지나 옷이 젖을 지경이다. 건물 처마 밑이 낫겠다. 다시 뛰었다. 우산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뛰는 사람은 오직 우산 없는 사람. 그래도 오라면 오라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다. 뭐 이왕 젖는 거.


5분가량이 지나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1km 정도 만 걸으면 될 테에 요즘 같은 때 누구한테 같이 쓰자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쓰자고 한쪽 어깨가 젖도록 우산을 내어 줄 사람이 있나. 방향이 다르다거나 못 들은 척 그냥 갈 길을 가는 거지. 너무 부정적으로 나갔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하에 편의점이 있다. 우산을 하나 사는 게 낫겠다. 3천 원 정도면 살 만하다 싶었다. 지하도에서 가끔 우산 파는 것 보면 투명 비닐우산 하나에 그 정도 했던 것 같다. 그거라도. 그런 우산은 없다. 편의점답게 그래도 가격대가 있다. 3천 원은 넘어 보였다. 바코드를 찍어보니 6,500원.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미 비닐을 벗겼으니 안 살 수 없는 처지다.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우산. 우선 날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요즘 스타일인지 우산 커버와 살이 묶여 있지 않다. 불량은 아닌 것 같고 원래 그런 듯한 검은색 우산. 그래도 자동이다.


투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하다. 새 우산이라 팽팽하다. 그래도. 몇 걸음 가지 못해 우산을 접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100여 미터는 갔을까. 비가 멈췄다.


귀찮은 우산이 되어 버렸다. 이미 그렇게 산 우산들이 몇 개인가. 다시 또 접는 우산이라도 가방 안에 넣고 다니자고 다짐한다. 여름에는.


기다리는 게 길어도 긴 게 아니다. 그 잠깐이 인생을 결정한다. 다른 방향으로 삶을 튼다. 그것을 경험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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