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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Aug 29. 2020

예민한 사람은 불행한가? 축복인가?

위로가 필요한 시간


다른 사람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을지 몰라도 내 앞에서 나에게 내가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무던한 사람이 아닌가. 통상 까칠하고 모난 성격을 예민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까칠하고 모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우리는 타인의 평가보다 더 높은 점수를 자신에게 주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강의하던 중 같이 강의를 끌어가는 파트너가 마이크를 채가서는 중간 휴식 시간 없이 빨리 강의를 끝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했다. 마이크를 가져가기 전에 그래 그것도 좋겠다는 말을 나눴다. 그리고는 본인이 참석자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잠깐 당황스러운 시간, 강의를 우선 진행을 했다. 못내 이상한 기분은 잠시 죽이려고 애썼다. 강의를 주관하는 담당자가 강의 후에 파트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예민한 분이시니 그것을 지켜 줘야 한다고 말이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한다. 어디까지는 되고 어디까지는 안 되는 게 명확하지 않다.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뒷걸음친다. 가끔 그런 점이 확실한 사람을 만나면 시원하다.


몇 번 뵙지 못한 분이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을 어떻게 진단을 했을까. 어떤 행동들이 그가 그렇게 보이도록 했을까.


타인이 내 영역 안으로 갑자기 들어올 때 당황스럽다. 한 번은 처음 보는 분이 강의가 끝난 후 모인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언제 더 볼 수 있는 사람인 가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말해보라며 밀고 들어왔다.


편집하다 보면 글자나 그림 위치 갖고 오랜 시간을 다툰다. 어떻게 보면 아무 도 신경 안 쓰는 부분일 텐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건 까다롭거나 소심한 사람이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 오탈자 하나가 책의 신뢰를 줄 수 있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행여 기관장이나 대표의 이름이라도 잘못 나가는 날에는 다시 해야 한다.


살면서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서는 2m 간격을 이야기한다. 친밀도에 따라서 거리가 다르다. 친구와의 물리적 거리, 일하는 사람들 간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있었는지, 왜 필요한지 모르는 분을 만날 때가 있다.


같이 일하는 팀원에게 서비스상에서 크게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고쳤으면 하는 데 자기 고집을 부린다. 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를 못한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면 안 하는 쪽이다. 물론 좋은 생각이라며 별일 없이 고치는 사람도 있다.


살면서 가끔 내 영역의 것이 아닌데 타인의 영역에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할 때가 있다. 의견일 수도 있지만, 권고의 수준이기도 하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쳤으면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상대는 자기 방식이 있고 생각이 있다. 하던 틀이 있고,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을 고치려 드는 경우 부딪힐 수 있다. 그로 인해 마음의 번잡스러움이 일어날 때가 있다.


가끔 모른 척, 못 본 척 넘어갈 때가 있다. 번잡스러운 때는 그런 말과 행동을 줄이는 게 몸과 마음에 좋다. 답답한 마음들이 곳곳에서 충돌한다. 어두운 상자 속에 갇힌 마음들이 풀어지지 않아 다툼이 많다.


타인이 내가 원하지 않는 선을 넘어서까지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다면 타인이 그어 놓은 혹은 그가 지키고 있는 선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고? 그냥 대충 살지."


타인의 일에 이런저런 말로 곤혹스럽게 하지 말고, 예민함을 내려놓고 무심함을 안고 살자. 그래,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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