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놀란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놀라고,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서 놀란다. 순간, 상대에게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에 더 놀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놀란 나에게 상대가 던지는 한마디,
"가방이 열렸어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가방 문을 닫는다. 제대로 닫지 못한 가방 문이 걷는 동안 시나브로 열렸는데 열렸는지 느끼지 못할 만큼 딴생각을 했다. 나이 들며 새는 게 한 둘이 아닌가.
나는 누군가 가방이 열려 있는 상태로 걷는 사람을 보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말이 안 떨어진다. 괜히 무안할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쏟아지거나 할 일도 아닌데 나설 것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가방 문이 열린 사람은 갈 길 가느라 바쁘다. 누군가 말해 주겠지.
나의 그런 망설임을 생각하면 나사서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의 용기에 놀란다.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호의적인 인간애를 발휘하는 걸까.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을 하지 못하는 차가 적지 않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잠깐 대기하는 동안 스마트폰 보느라 출발을 제 때 못하면 뒤차의 경적 소리가 자동으로 터진다. 앞에 누가 탔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함부로 경적을 울리지 말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시가 있지 않나. 뜨거운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남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기 끔 오버를 할 때가 있다. 태풍이 불어서 가게 앞 홍보용 배너가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갈등을 한다. 일으켜 세워주고 갈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내가 왜 그걸 일으켜 세워'
'그냥 가'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는 동안 배너를 지나친다. 괜히 사람들 앞이라 그러는 걸까.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 갈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가면 되지, 뭐 그것까지 신경을 쓰나. 몇 번을 세워 놓았다. 1초, 2초도 채 안 걸리는 시간이다.
2차선에 쓰러진 라바콘 때문에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다니는 상황. 다른 곳으로 치우면 될 것을 누가 치워주나? 뒤에 오는 차가 없는 듯 비상등을 켜고는 라바콘을 도로 밖으로 치웠다. 바람에 쓰러져 넘어온 듯하다. 뒤에 오던 택배차량의 경적이 화가 났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터, 내 경험에 비추어 그가 경적을 누르며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걸까. 굳이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왜 먹으려 하는 걸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들 한다.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잘 되면 다행이지만 돕는다고 나섰다고 일을 망치는 경우는 피곤하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나서 뿌듯한 마음을 갖는 게 낫다.
오래전에 지하철 안에서 바지 앞 지퍼 열렸다고 귓속말에 말해 준 그분이 떠오른다. 이 사람 왜 그러나 싶었던... 나름 남 모르게 알려준다고 한 건데 경계를 먼저 했으니.
내 것도 못 챙기면서 남의 것은 더 잘 보이는 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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