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불러오는 딴 짓거리 시간이 점점 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걸까. 뇌의 연결 시냅스가 이전과 다르게 좀 반짝거림이 덜한 탓일까. 그렇다고 그 전에 반짝거림이 컸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해는 하지마라. 어쩌랴.
비가 오는 주말, 아니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그런가. 무슨 연유로 와야 할 아이디어는 오지 않고 딴 생각만 든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입으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가는지 모를 먼지와 속도제한이 있어도 가볍게 무시하며 달리는 차량소음으로 가득했을 토요일 오후정성이 부족한 탓인가. 이 책 저 책 뒤적거려보고 생각을 마구 돌려보지만 몇 시간째 소용이 없다. 비가와서 다행이다. 머리 싸매는 일만 아니었다면 산으로 강으로 갈 생각만 했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는 불행일 수도 있을 듯 해 쉽게 말꺼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건 뭐 내 탓이 아니라 일기예보를 믿지 못한 탓이 아닐까. 부처님의 자비로 오늘 하루 미워하지 않으며 살생하지 않으며 평안한 하루를 모두 보내시길.
토요일 성당은 미사를 보기 위해 주차장이 꽉 찼다. 불교와 천주교는 다른 종교보다 그래도 통합이 잘 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로 오고가면서 미사를 보고 법회에 참석도 한다. 종교가 그 뜻을 함께 모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신도 챙기는 일 만큼 사회 구성원의 연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에도 서로 앞장선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이디어. 우체국 특급으로 부쳐달라고 했어야했나.
"신이시여 제가 아이디어를 주세요. 이 난국을 돌파할 때깔 좋은 놈으로 하나 똬악 내려주소서."
방금 신부님의 미사가 끝난 것일까. 정문을 통해 신자들이 우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분홍빛 우산과 파란 하늘 닮은 우산을 쓴 두 아이가 문을 나선다. 남매일까. 두 아이는 무엇을 빌었을까. 이 번 수행평가 잘 보게 해주세요? 정치인들이 정치 좀 잘해서 대학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열리게 해달라고 했을까.
오늘 이분들은, 각자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세상의 안녕과 가정의 평화?
지난 어린이날에도 비가 와서 연휴가 연휴 답지 못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도 비가 내린다. 뭐 날을 골라서 내리는 것은 아닐 텐데 공교롭게 그럴 때가 있다. 일을 망치려고 한 게 아닌데 하는 일마다 일을 부서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안되던 일도 그 사람만 나타나면 술술 풀릴 때가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양 팔을 등뒤로 모아 끌어 올렸다. 순간 희미하게 반짝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살 속에 들어 있는 뼈들이 소리를 내며 한 두 개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좋은 생각, 돈을 버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힘든 날이 있다면, 사실 있는 자리에서 일단 떠나는 게 상책이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벗어날 수 있을 때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라 할지라도 답답한 구석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새로운 생각은 낡은 곳에서는 차오르지 않는다. 전혀 없던 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내 속에 갇혀 있던 것이 열리는 것이다. 서로 각자 떨어져 있던 것들이 뇌 속에서 연결되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은 연결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생각은 연결이다.
일단 두 개라도 잘 붙여보자. 부처님의 자비로 두 개라도 건졌다.
아이디어의 발견을 쓴 샘 해리슨은 낯선 곳, 가보지 못한 곳, 새로운 땅으로 가서 그 곳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오케이!
새로운 곳으로 가라. 새로운 국가, 새로운 도시. 새로운 거리
당신이 떠나면 당신의 뇌도 떠난다. 따분함을 떨쳐낼 수 있다. 주변을 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다. 아이디어가 보일 것이다. 238쪽, 샘 해리슨의 <아이디어의 발견>(비즈니스맵) 중에서
그러고보니 공항에 가본 지 오래다. 이륙 직전의 엔진 소리, 출발을 알리는 기내방송과 신호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