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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라 Sep 13. 2024

악에 둔감해지지는 말자

영부인의 자살예방의 날 행보에 대하여 드는 생각

악의 평범을 거부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악은 단순한 ‘악의 평범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사고, 반지하 수해 참사 등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시스템 부재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를 목격했다. 하지만 그 후, 그 책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참사의 현장을 마치 구경하듯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실수나 무능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책임 회피이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자 하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다.  

   

 이번에 특히 자살예방의 날에 있었던 영부인의 행보는 악의 '평범함'으로 설명하기에 계산적이고 의도적이다.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조사한 권익위 부패방지 국장이 자살한 사건 이후 진상조사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사건의 당사자가 이런 상황에서 자살예방을 주제로 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단순한 무관심이나 생각 없는 행동이 아니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처럼 보인다.          



무능한 자의 위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사용된 '악의 평범성' 개념에 대해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악이 특별한 계획이나 천재적인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무관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단순한 무관심이나 무책임을 넘어, 의도적이고 목적적인 악을 마주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에 대해 철저히 회피하면서도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모습을 이번 정부 인사들에게 볼 수 있다. 

무능한 자의 위선에도 속아주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더 뻔뻔해지고 있다. 

그들이 나중에 심판대에서 아이히만처럼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성실하게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추악한 변명으로 숨더라도 우리는 이제 속지 않아야 한다.      








아래는 자신이 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게 행동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1) 나치 독일의 일반 시민들의 방관자적 태도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함'을 설명할 때 주목했던 또 다른 측면은 나치 독일의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도, 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 이들은 단순히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무감각함을 보여주었으며, 나치의 잔혹한 행동이 일어나는 동안 묵인하거나 외면했다.      


2) 미국의 아프리카계 노예제도와 남부 농장주들의 태도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농장주들의 태도 역시 무감각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노예를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재산으로 취급하며, 노예제의 잔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이 무감각한 사고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악이 유지되도록 방조했다.      


3)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의 회고록 'Night'

엘리 위젤의 회고록 'Night'(밤)에서도 무감각한 악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게 나온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비극을 일상화하며 서로를 외면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심해지며, 생존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외면했다. 이 무감각함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악에 적응하고, 그것에 무심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4)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서도 악의 무감각함이 두드러진다. 실험 참가자들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명령에 복종하는 자신을 정당화했다. 이 실험은 일상적인 사람들이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면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마치며

이 사회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악은 ‘비속함'과 '천박함'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을 방조하고 방관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도 그 악에 동참하게 만든다. 아렌트가 경고한 것처럼, 악은 단순히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무관심, 회피, 자기 정당화 속에서 악은 커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그 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단순한 '악의 평범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비열함과 비속함, 둔감함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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