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곡기에 넣어 돌려본 나의 글
알곡일 거라 믿었건만
바람결에 흩어지는 가벼운 쭉정이였다
남은 것이 없다
탈탈 털리고 없다
꾹꾹 눌러쓴 문장들,
이건 재미있겠지? 저건 감동이겠지?
손끝의 진심조차
퇴고를 거치면 칼끝에 찢겨 나가
쭉정이만 남았다
내 손에서 툭툭 떨어지는
깎여진 문장들, 잘려 나간 단어들
쭉정이는 알곡이 아니라고,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씨앗을 품었던 껍질이었다
뜨거운 볕과 폭풍우를 견디며
결실로 이르는 모든 과정에
함께했던 흔적이었다
다시 비옥한 흙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작고 사소한 위로로
당신의 삶에 가벼운 안부가 될 수 있다
퇴고 후 남은 내 글들도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버려졌다고, 쓸모없다고 느끼지 않기를
그래서 오늘도 쓴다
깎아내고, 다시 남겨 본다
쭉정이 같은 글이어도 괜찮다
내 안에 있던 엉망진창 흔적이라도 좋다
농사짓는 계절을 연습하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