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선생님의 시에서 각성
김수영 선생님의 시,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 선생님은 “민주주의의 싸움에는 그림자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빛이 비칠 때 생겨나는 어둠의 흔적.
선생님이 표현한 그 그림자는 민주주의 적.
보인다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텐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적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싸워야 한다. 마치 우리 몸에 딱 붙어서 그림자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일상 가운데 가까운 사람이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적이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김수영 <하······ 그림자가 없다> 전문을 실어본다. 읽고 또 읽을수록 나 자신도 민주주의의 적이 아닌지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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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미국 영화배우)나 리처드 위드마크(미국 영화배우)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됭케르크(프랑스 북부의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유명한 철수 작전이 있었던 곳)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진 곳)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 혈투>(존 스터지스 감독이 연출한 1959년 작 서부영화)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사이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이 시가 쓰여진 후 얼마 자나지 않아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 시는 혁명의 마중물이었을까.
기쁨도 잠시, 시인은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 완성이라 착각하지 않기를, 승리에 도취되지 않기를 바랬던 것 같다.
두 달 후 [푸른 하늘을]을 발표했는데 이 시를 보면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그는 시 「푸른 하늘을」에서 노고지리를 노래하며 자유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 /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이 질문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투쟁이 아닌, 그 이면의 고통과 희생을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승리의 깃발을 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찾아오는 고독과 지속적 투쟁을 담고 있다.
최근의 내란 사태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이 깊은 본질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사람들은 흔히 권위적인 지도자 한 명을 무너뜨리기만 하면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가 경고하듯, 민주주의는 그런 단순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자와의 싸움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권위주의가 뿌리내린 내면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인식하고 이를 깨뜨려야만 한다.
노고지리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김수영 선생은 노고지리가 하늘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보고 노래한다고 말했다. 자유란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고독을 감수하며 끊임없이 비상하려는 노래다. 민주주의 역시 그저 권력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을 향해 스스로를 계속 뛰어넘으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낭만적 열정에 빠져 민주주의를 승리의 열매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이 4·19 혁명 후 느낀 것은 혁명의 순간적인 승리가 아니라, 그 후에 닥친 고독과 좌절이었다. 내란 사태가 진압되고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곧바로 바뀌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은 불편한 대화를 피하지 않고, 실생활 속 행동을 변화시키며, 내면의 권위적 습관과도 맞서야 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김수영은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라는 고뇌 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통과 희생 속에서 쟁취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 그렇다..."
시인이 길게 탄식했던 이유는 민주주의가 결코 쉽지 않은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상향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는 현실 속에서의 고독한 과정이다. 우리는 이 싸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내란 사태가 마무리된 후에도 우리는 자유를 단순한 낭만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권위적 지도자의 제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후에도, 김수영이 노래한 노고지리처럼 끝없이 고독을 견디며 하늘을 향해 날아야 한다. 우리가 싸우는 민주주의는 그림자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싸움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첫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