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내가 발칙하다고 한다.
발칙함이 무엇일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 글도 발칙하길 바라며 발칙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랑하는 상대, 혹은 썸타는 관계를
예로 들어 발칙함에 대해 써본다.
발칙함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드는 것이다. 단순히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대신 "너 지금 나 때문에 숨 가빠하고 있어. 맞지?" 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정하는 것. 이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본다. 썸을 탈 때도 "우리 저녁먹고 술 한잔 할까?" 같은 안전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그런 우회로를 택하지 않는다. "너랑 있으면 내가 위험해져. 내 자제력 한계를 테스트 중이야" 이렇게 직진한다. 상대방이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이 가장 흥미롭다.
진정한 발칙함은 타이밍에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둘만 남았을 때 갑자기 귓가에 대고 "지금 네 상상 속에 내가 있지?" 속삭이는 것. 상대방의 심장이 빨라지는 소리가 들릴 듯한 순간, 그러면서도 웃는 모습을 보는 것. 이런 순간들이 진짜 연인을 만든다.
스킨십을 할 때는 더욱 대담해진다. 목 뒤를 살짝 스치며 "여기 만지면 소름이 돋을 것 같은데, 해봐도 될까?" 물어보는 척하면서 이미 손을 뻗고 있는 것. 허락을 구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행은 이미 완료하는 것. 이것이 발칙함의 정수다.(물론 이미 가까운 사이. 정도의 눈치는 있어야 함. 성추행논란 ㄴㄴ)
"나 너한테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드는데, 너도 그렇지?" 이런 말을 던질 때 상대방의 반응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얼굴은 빨개지면서 "무슨 소리야" 하지만 눈빛은 이미 동의하고 있다. 사람의 진심을 읽는 순간들이 이렇게 명확할 때가 있다.
손을 잡고 "이 손으로 나를 어떻게 만질지 궁금해" 말하면 상대방은 진짜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오는 혼란이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발칙함과 불쾌함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
"너 지금 키스하고 싶어하는 것 다 보여. 참을래, 말래?" 이런 직구를 던지는 것도 발칙함의 스타일이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하는 것. 상대방이 "미쳤다" 하면서도 웃으면 그것이 답이다.
살짝 밀착하며 "이 거리가 내 안전거리야. 더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 예고하는 것. 그런데 이미 안전거리는 침범당한 지 오래다. 경고하는 척하면서 이미 실행하고 있는 이런 모순이 발칙함의 묘미다.
솔직한 고백도 무기가 된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아? 정말 힘들어"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너도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무언의 압박.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신중하게 해 줄 멘트. "난 너의 사회적 위치말고도 모든 것을 세워줄 거야. 그것까지도." 이 말을 들을 때 상대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 모습일 것이다.
누구는 나를 발칙하다고 한다. 나는 그냥 솔직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하고, 끌리면 끌린다고 한다. 눈치게임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나는 발칙하다. 그리고 나를 발칙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것은 상대를 내 시간으로 끌어오는 일이고, 우리 관계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경계를 먼저 허물어주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어디든 탐험을 허락하게 된다.
발칙함의 핵심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설레게 하는 것이다. 경계선을 허물되 기분 좋게 허무는 것. 상대방이 "정말 발칙해" 하면서도 웃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그 웃음 속에는 "더 해달라"는 신호가 숨어있다.
내 글도 그렇게 발칙하고 싶다.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고, 안전지대를 벗어나게 만들고, 경계를 허물어주는 글. 읽는 이로 하여금 "이 글 참 발칙하네" 하며 웃게 만드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발칙함은 센스이자 예술이다. 타이밍과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정확히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작정 도발적인 말을 하는 것이 발칙함이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면서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발칙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