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를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5화 늦게 도착한 색

by 살라

나는 사실,

당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됐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보여주는 다정함이 좋았고

당신이 건네는 질문들이 좋았고,

당신이 만들어 주는 장면들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마음을 쓰고 있는 나를 가만히 보게 됐다.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세심하게 바라보는 내가 있었나.

이렇게까지 상대의 온도를 맞추려는 내가 있었나 이렇게까지 기꺼이 마음을 건네는 내가 있었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를 낯설게 바라봤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를 다시 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쓰는 일은 결국 내가 얼마나 여유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는 일이었고,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조용한 기록이었으며, 이제는 귀한 그에게 어울리는, 나 역시 귀한 사람이 사람이 되었다는 아주 개인적인 확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나를 더 좋아하게 됐다. 당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을 통해 내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만큼 그 마음을 품고 있는 나를 같이 바라본다. 그게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나는 이제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그 마음을 만들어낸 나를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싶어진다. 이건 당신에게서 시작된 감정이지만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지금에서야 조용히 인정한다. 나는 생각보다 나를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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