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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는 시간 03화

지워지지 않을 자리

by 살라


축축하게
끈적이게
치덕하게
질퍽하게
미련맞게
쭈글하게
찰박하게
찌부러져
붙어 있을걸

한때는 바람에 쿨하게 실려
날아가던 낙엽이었지.
가벼웠던, 떠나기도 쉬웠던 그때
이렇게 땅에 눌릴 줄 몰랐어

이제는 후회인 걸까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흩어지던 그때가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질퍽한 땅 위에
미련스레 눌러붙어,
흔적을 남겨 버린 걸

바람이 다시 불어도
더 이상 흔들릴 힘조차 없는 나
쿨하게 떠났던 순간들이
오히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두려워,
찌부러진 이 자리에
붙어 남아있는 게
진짜인 걸까

마른 날이 오면
남겨질 자국도 없이
모두 사라질까

미동조차 없는
비오는 날 낙엽처럼
붙어 있으면
땅은 기억해주겠지
끝내 지워지지 않을,
내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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