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남성 1700만 명의 할아버지로 추정! 즉, 중앙아시아 8%, 전 세계 인구 0.5%의 남성이 칭기즈칸의 자손으로 보인다는 동일 염색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 남성 200명 중 1명이 그의 자손인 셈이다. 세계에서 씨를 가장 많이 뿌린 것이다.
기록 없는 그의 행적에 대하여 잔인한 정복자 혹은 약탈자라는 오명으로만 우리에게 익숙하다. 승자가 아닌 당한 패자들의 기록 위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약탈하고 죽이고 하면서 영토 확장이라는 극히 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한번 보자. 이 위대한 정복자에게는 보통 사람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다.
9살 때 아버지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하고, 배다른 형 벡테르가 엄마를 품을 수 있는(수계 혼) 상황이 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승부욕 강한 테무친(칭기즈칸 아명)은 형을 죽이게 된다. 범상치 않은 그의 행보에 테무친 가족을 버렸던 타이치우드족은 후환이 두려워 테무친을 미리 제거하고자 그를 쫓고 결국 잡히게 되고 그의 목에 칼을 채워 가두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테무친은 칼을 쓴 채 탈출을 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고난의 행보는 어려서부터 목숨을 거는 게 다반사였다. 이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1206년에 몽골을 통일하게 되었다. 부족 통합으로 인하여 짧은 기간 동안 평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정복자 칸은 또 다른 수심에 잠기게 된다. 불어난 가족(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칭기즈칸은 세계 정복을 구상한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모두 칭기즈칸의 땅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파죽지세로 영토 확장이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만든 이 영웅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배신한 탕구트족을 정벌 도중 낙마로 생을 마감한다.
몽골 동쪽 끝(헨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세계 정복까지 감행하게 된 그의 리더십과 그의 내면의 모습을 아주 조금만 들여다보자.
칭기즈칸은 유목민들의 시야를 세계로 돌렸다. 유목민은 계절 따라 가축과 함께 이동하기에 저장 문화가 없다. 그러다가 자연재해(홍수. 폭설, 전염병등)가 일어나 가축을 잃기라도 하면 생계가 어려워진다. 생존을 위하여 궁여지책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옆 동네 침략이다. 침략에 약탈에 원한 쌓이고 훗날에 쌓인 원한은 갚아야 되고 이러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이런 고착화된 유목민 사고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인물이 칭기즈칸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지 말자. 저 밑에 중국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비단옷이 있고 먹거리가 쌓여있다. 우리 힘 합쳐 내려가자. 당시 유목민들은 짐승 가죽을 벗겨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자주 빨아 입을 수 없기에 겨울에는 이도 생기고 하였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비단을 보니 물에 헹궈서 입어도 되고 가볍고 기상천외한 물건으로 비추었을 것이다. 서쪽 끝 저기에는 요술 램프도 있다. 탈 몽골을 하자! 이렇게 칭기즈칸은 200만 명도 되지 않은 몽골 부족을 이끌고 세계 정복을 시작하게 된다.
칭기즈칸은 약탈에 익숙한 당시의 전시상황에서 공정분배라는 엄격한 룰을 만들었다.
전시 중에는 약탈을 금지시켰으며 종료 후에 공정 분배 원칙을 만들었다. 군인이 전사라도 할 경우에는 전리품을 가족에게 어린 자식에게까지 분배를 하였다. 이처럼 확실한 명분을 얻은 군인들은 사기충천 분기탱천하여 전쟁에 임할 수 있었고 이러한 몽골 군인들을 당해낼 적은 없었다. 승리 후 전리품 가득 가지고 의기양양 환향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멋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승리 뒤에 따르는 공정한 부의 보상은 “나도 커서 멋진 군인 돼 야지” 하는 것처럼 어린아이에게는 성공의 아이콘 동경의 대상까지 되게 하였다. 오늘날의 군인들 멋진 휴가복에 감동하고 군인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과 같음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