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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결혼식>

타이밍보다 중요한 것

by 허니모카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500일의 썸머>를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한 이야기는 커징텅(가진동)이 션자이(천옌시)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모습과 닮아있다. 내가 널 좋아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내가 잃어버릴 지도 모를 그 무엇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네가 좋고, 너 또한 날 좋아해 준다면 세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홀로서기에 참으로 각박하다는 것을 알기 전에만 가능한 감정이다.



사실 요즘 십 대들은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영화에선 아직 순수하게 나온다. 그래서 한없이 황우연(김영광)이 예뻐 보인다. 에피소드들이 많이 본 장면들의 조합일지라도 처음 본 것 인양, 너만이 그 여자를 위해 하는 행동인 양 속아 넘어가 준다. 한동안 교복 입은 아이들의 전형적인 사랑이야기가 쭉 나열되고, 이유 없이 웃음 짓게 된다. 그저 풋풋하다, 예쁘다, 귀엽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어차피 그런 감정을 느끼고자 영화를 본 것이라 초반에 참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는 다르게 좋아하던 여자와 결국 연애를 한다. 이제 영화가 현실 연애로 돌아서나 싶었다.


짝사랑하던 사람과 끝까지 연애를 해보지 못하는 것과 그 사람과 연애를 해보는 것은 참으로 다르다. 그 감정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변화의 중심에 남녀가 있을 뿐, 그렇게 만든 건 물리적 시간, 경제상황, 타인의 시선, 나이가 주는 압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황우연(김영광)과 환승희(박보영)의 감정도 그렇게 연애의 시간을 거쳐 간절함이 익숙함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네가 아닌 나를 보게 되고, 찾게 되며, 우선순위가 바뀐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500일의 썸머>로 갈아타나 싶었다. 사랑에 대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남녀의 차이를 보여주려나 했는데, 그저 톰(조셋 고든 레빗)을 받아주지 않는 썸머(조이 데샤넬)만을 살짝 따라한 느낌이었다.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고 믿는 톰과 우연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썸머. 승희는 그녀와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르다. (애초에 영화의 구성 자체가 다르고, 여주인공들의 감정도 달라서이겠지만.)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경험한 그들이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우연을 찾아온 승희를 보며 혹시나 “보고 싶었어.”라고 뜬금없는 고백을 한 후, 해피엔딩으로 좋게 마무리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였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후의 장면에선 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현실에서 저런 게 어딨어, 따지고 들자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장면이 많고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마지막 장면이 좀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우연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다. 물론 승희가 해외로 갈 때 우연이 "넌 가, 난 기다릴게" 했을지 몰라도 그 후 연락이 스멀스멀 끊겼다. (승희는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끊었을테지만)


그런데 몇 년 뒤 그녀가 보낸 청첩장을 보고 갑자기 미련이 생기고 못다 한 사랑이 훅 밀려와 아쉬움이 넘쳐나고, 고립되어야 하루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슬플까? 갑자기 우연의 사랑에 진정성이 떨어졌다.


그렇게 승희가 보고팠고, 못 잊었으면 그동안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수없이 연락하고, 그녀를 만나러 비행기를 탔어야 했다. 전혀 그러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청첩장 한 장에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갑자기 결혼식장에 가서는 고마웠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좋게 끝내 보고자 하는 마무리였다.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을 지향하며, 사랑은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 난 널 후회 없이 사랑했고, 우린 헤어졌지만, 널 날 성장시켰다. 고로 고맙다. 너무 고맙다. 이건가?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연이 보여준 행동은 좀 억지스럽다.


현실에서라면 어땠을까. 결혼한단 말을 하러 찾아가지도 않았겠지만, 만약 했다면. 하루 이틀 기분이 좋진 않았을 거다. 지난 추억이 떠오르고, 잠시 아프기도 아쉽기도 했겠지.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고맙다고 느끼기도 했을 거다. 그럼 문자 하나 남겼을 것이다. 고마웠다, 잘 살아라, 정말 네 결혼을 축복한다. 혹은 마음에 담아둘 뿐 굳이 너한테 고맙다는 말까진 하지 않는다.



연애의 달콤함과 쓴맛을 느껴본 우연은 성장했고, 다른 사랑을 하면서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다. 사랑을 알았다고 해도, 다른 사랑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신을 또 발견하면서.




사랑에 관한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타이밍’이란 단어가 이 영화에서도 우연의 입을 빌려 나온다. 사랑은 타이밍이다,라고.


딴 남자가 고백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네가 위급할 때 내가 짜잔 하고 등장, 네가 연애를 하고 싶을 때 결혼을 해야 할 때 날 만나는 타이밍.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사랑에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만약 우연의 고등학교 시절에 승희가 전학을 오지 않고, 우연이 치킨집 알바를 할 때 만났다면 첫눈에 반하지 않았을까? 혹은 장례식장에서 우연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을까?


타이밍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 어긋났어도
그녀에게 다가가는 용기와
고백할 타이밍을 놓쳤음에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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