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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

이토록 익숙한,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

by 허니모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놓은 인물들의 설정은 제각각 다 과하다. 모두의 비밀이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중간중간 어색한 장면들도 있다. 뜬금없는 PPL이라든지, 벨소리 하나로 뮤지컬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든지. 그럼에도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하며 웃음을 유발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과 같이 있으면서 때론 솔직하게 때론 거짓으로 대한다. 솔직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쩌면 온전히 하나의 색을 지닐 수 없는 감정의 일부 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나머지 반은 또 다른 타인과의 만남에서 털어놓기도 한다. 질투라는 감정에 부러움과 얄미움이 동시에 들어있듯이 말이다. 그럴 경우 상대에겐 웃는 낯으로 부럽다고 말하고, 다른 데선 얄밉다고 말한다.



세 여자.

수현(염정아), 예진(김지수), 세경(송하윤)


일대일 사이에서 하는 대화와 일대다로 하는 대화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너에게 보여준 모습도 진심인데, 왜 다른 데선 너에 대해 험담을 하게 될까. 감정이 딱 떨어지듯 한 가지는 아니어서, 대화에선 감정을 걸러 좋은 말만 하기 쉽다. 억지 칭찬이기보다 그 마음도 사실에 가깝다.


하지만 좋은 말의 반대편에 있는 작은 파편들, 그 부스러기 같은 감정들도 감정인지라 또 다른 상대에게 풀 수도 있다. 대개 그것이 안 좋은 말이라면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난 두 가지 감정이 모두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비중이 좀 다를 뿐이다.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에.


내 앞에서 한없이 웃었던 상대가 다른 데 가선 내 욕을 했어도, 그가 늘 적군이 되진 않는다. 그 순간은 다신 안 볼 것처럼 갈라지지만, 곧 다른 상황이 오면 다시 뭉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상대의 변명도 붙는다. 그걸 다 믿진 않아도 믿고 싶어지며 다시 좋은 관계로 이어지고 싶기도 하다.


특히 그 관계가 너와 나 둘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럿의 타인도 얽힌 사이라면 더욱. 여럿이 속해 있는 관계 자체를 깨고 싶지 않다면, 그 무리에서 나만 쏙 빠지고 싶지 않다면 그냥 못 이기는 척 상대의 변명을 수용한다. (물론 뒤통수를 맞은 강도가 너무 다면 다시 보지 않겠지만)


수현과 예진 사이도, 수현과 세경 사이도, 예진과 세경 사이도 다 미묘한 감정이 있다. 겉으론 다들 언니 동생 하며 웃고 있지만.


영화는 하나 둘 비밀이 들통날 때마다, 덮으려 할 때마다 웃음으로 풀어간다. 그래서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긴장과 불안, 배신과 상처에도 난 웃고 있었다. 그들은 타인이니까, 철저히. 그것도 대놓고 웃어도 되는 영화 속의 타인.


영배(윤경호)는 게이다. 친구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친구 중 하나는 화를 낸다. 40년 지기에게 어떻게 그동안 말을 안 할 수가 있냐고. 말을 했다면 지금과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어떻게? 다른 친구가 묻는다. 게이인 게 화가 나는 거야, 말을 안 해서 화가 나는 거야. 너무 콕 집어 묻는 건, 이미 상대가 대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의 비밀을 알고 싶었을까, 알고 싶지 않았을까.


때론 타인의 비밀이란 건 공유하는 자체로도 마음이 무겁다. 상대가 뭘 어떻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그 사실을 알게 것 자체가 감당하 버거운 것이다.



석호(조진웅)는 스무 살 딸에게 콘돔을 주는 아빠다. 외박을 하고 싶은 순간에 상담전화를 걸 수 있는 사이라니.. 그 사람이 부모라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얼마나 관계가 끈끈하면 이럴 수 있을까. 둘 사이에 믿음과 의지가 가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빠의 조언은 왜 딸이 중요한 순간 전화를 했을까, 이유를 납득하게 한다. 참 멋진 아빠다.


멋진 아빠는 멋진 남편일 수밖에 없는 건지.. 아내와의 대화도 참 멋지게 풀어간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난 순간, 그는 변명을 하지 않고 설명을 한다. 그래서 그 대화는 언성이 높아지거나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아내도 어긋난 관계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구나, 인정하는 남편이라니.


멋지게만 보이는 남편임에도, 그 둘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면, 타인은 알지 못할 부부만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그 둘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이 감히 어찌 알겠는가.

부부도 남이다. 우울의 원인에 아내도 포함이 되어있다면, 아무리 아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해도 그녀에게 상담을 받을 순 없는 것이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라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래 놓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때론 어떤 비밀은 관계의 유지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는가 보다.


비밀의 절대 강자, 불륜.

캐릭터의 성격과 믿음을 전제로 하는 부부 관계를 얘기하면서 필요한 설정이지만.. 비밀공개의 측면에서만 보면 변명이든 설명이든 필요없다.




전화벨이 울릴수록 비밀이 탄로 나고, 숨겨왔던 속마음이 보이고, 관계는 어긋난다. 하나하나 뒤틀리기 시작한다. 저렇게 모든 게 어그러지면서 끝이 나는 건가, 끝으로 갈수록 영화가 어떻게 끝날 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영화, 결말마저도 완벽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서로의 비밀을 캐내고 굳이 마음의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것. 너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내 비밀도 말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파장이 몰고 올 분위기가 봄날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은, 집들이는 집들이답게 웃고 즐기며 “좋은 집에 이사 잘했네, 부럽다, 잘 살아”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만나고 관계를 지속한다.


어찌 보면 관계란 건 아슬아슬한 줄타기일지도 모른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칭찬과 빈말. 그래도 그 속에 진심이 있으니 관계가 유지된다. 그 진심에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 내가 그렇듯 타인도 그렇다는 걸 아니까, 때론 마음을 확 주기도, 적당히 가려듣기도, 마음을 나누기도 거둬들이기도 한다.


사실, 앞서 보여준 모든 과정들이 실제 벌어졌다고 해도, 그들은 계속 만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잠깐의 식사 시간만 해도 그렇지만, 적군은 아군이 되기 쉽고, 아군은 적군이 되기 쉽다. 상황은 늘 변하니까. 그들은 또다시 만나고 이번엔 진짜 비밀이 없다면서 또 비밀을 만들 것이다.


제목마저도 마음에 든다. 완벽한 타인.

친구든 부부든 혹은 부모와 자식이든. 우리는 모두 타인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너와 나는 다르다. 자꾸 깜빡깜빡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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