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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시리즈>

사랑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여전히 계속된다.

by 허니모카

비포 시리즈는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늘 1순위로 있었던 영화다. 진작부터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쓰고 싶었지만, 좀 머뭇거렸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너무 좋아서 쉽게 좋다, 라고 하면 아쉬운, 좋다는 느낌을 더 자세히, 더 잘 표현하고 싶은데 되지 않아 속상한. 그럴까봐 쉽게 쓰지 못했었다.

비포 시리즈는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 하나씩만 보자면, 그냥 사랑에 대해 기술한 깔끔한 영화다. 하지만 세 번의 시리즈를 거치면서 영화는 완벽해진다. 20, 30, 40대의 사랑이 변해가면서 점점 빠져들었고, 더 좋아졌다.


최근에 영화를 다시 봤다. 난 영화가 좋아도 다시 보진 않는다. 거의 웬만해선. 그냥 좋았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편이다. 다시 보면 앞서 알고 있는 장면들이 계속 떠올라 재생 속도를 앞질러 간다. 그럼 약간 흥미를 잃기도 한다.


그래서 온전히 기억이 안 날 때쯤 다시 보는 건 가능하다. 근데 본 영화보다 보지 않은 영화들이 많아 그 쪽에 먼저 손이 간다. 그래서 한 번 본 영화는 기억 속에 머물러 있거나, 기억 저너머로 묻힌다.

선라이즈보다는 선셋이 더 좋았고, 선셋보다는 미드나잇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영화가 꽤 긴 텀을 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를 내놓아서 인지, 그 텀만큼 나 또한 나이를 먹었고, 점점 공감이 갔다.


비포 선라이즈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다. 밤새. 서로 호감을 갖지만, 장거리 연애와 이별의 두려움 때문인지, 연락처 교환 없이 6개월 후에 만날 약속을 한 후 헤어진다. 그게 영화의 전부다.


시종일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처음 보는 남녀, 그것도 호감을 가진 사이라면 할 말은 정말 많겠지. 그런데 그 대화란 것이 보통 친구관계 혹은 연인관계의 대화와는 좀 다르다. 취미가 뭐야? 좋아하는 음악은? 같은 건 질문하지 않는다. 사랑, 죽음, 관심사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그중엔 더 리얼하고 단도직입적인 성적 질문도 포함된다.


아마 그 둘이 다른 상대를 만나서 그런 질문을 했다면 반 이상은 고개를 흔들며 달아났을 것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둘이 만났기에 대화가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탁구 치듯이 주고받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잘 통한다고 느끼며.


처음 볼 땐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20대에 만난 그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 전이고 아이도 없으니 당연히 아이 이야기는 빠지지만, 부모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약간 놀랐다. 23살의 셀린느. 아직 부모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아이. 그녀의 관심사와 생각의 테두리에 자신과 부모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타인과의 대화에서 부모가 서서히 빠지게 될까. 미드나잇의 셀린느에 가까운 나이가 되니, 문득 20대와 40대의 대화에서 그런 점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자신의 십 년 후 모습을 알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감과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열망을 가진 20대. 처음엔 어떤 감정으로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시리즈가 끝나고 그들의 10, 20년 후의 모습을 아는 상태에서 보니까 좀 새로웠다. 마치 미래를 아는 자가 된 느낌? 저런 고민과 과정을 거쳐 제시는 작가가 되었고, 셀린느는 환경운동가가 되었구나 싶다.


비포 선셋


아, 이럴수가. 난 사실 이번에 비포 선셋을 다시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걸 솔직히 말을 해야 하나.. 좀 민망한데.

난 이제까지 제시가 선셋에서 유부남이라는 걸 말하지 않은 줄 알았다. 무슨 말이냐면, 작가가 된 제시가 프랑스에서 사인회를 하는데, 그걸 알고 셀린느가 찾아와서 둘은 몇 년만에 만난다.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6개월 후, 제시는 약속된 날짜에 나갔고, 셀린느는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나가지 못했다. 그 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제시는 몇 시간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전에 둘은 전처럼 줄기차게 대화를 나눈다. 난 그 대화 중에 유부남에 관한 건 생략된 줄 알았는데, 셀린느가 먼저 결혼했다며?라고 묻는다. 그러자 제시도 숨김없이 결혼생활에 대해 말한다. 난 왜 이 기억을 삭제해 버렸을까?



내 기억엔 긴 대화와 마지막 장면만이 남아 있었다. 셀린느의 집에서 소파에 앉아 미소를 머금고 셀린느를 보고 있는 제시, 살짝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하는 셀린느. 그리고 끝.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서 70분가량은 깡그리 잊어버렸나 보다. 제시는 과연 비행기를 탔을까, 타지 않았을까. 그건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이러면서 끝내는 게 그 당시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미드나잇에 보면 그 날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그 후 셀린느가 뉴욕으로 와서 같이 지내다, 쌍둥이를 낳을 때쯤에 다시 두 사람은 파리로 옮겨와 생활한다.)

대체 내 기억의 회로는 왜 저렇게 제멋대로였을까. 선셋 이후, 몇 년이 지나 미드나잇을 보고 난 바보같이 충격받았었다. 약간의 배신감도 들면서.. 뭐야.. 제시, 어떻게 유부남일 수가. 그러면서 말도 안 하고, 사랑 운운하더니 아니 딴 여자랑 결혼했었어? 와.. 너무한다. 그러다 그래 저게 현실이지. 그럴 수 있지, 저런 게 바로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의 다른 모습이지, 라고 설렘에 상처 입은 자신을 다독였었다.


후반엔 다시 영화가 좋아져 그냥 묵인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미드나잇을 그런 착각 속에서 봤다. 이번에 다시 보지 않았다면, 난 영영 착각 속에 있을 뻔했다. 설마 내가 졸면서 봤나? 싶어 예전에 썼던 감상평을 보니, 제시의 결혼에 대한 실망이 적혀있었다. 아, 역시 제멋대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스스로가 만든 착각은 20대의 풋풋한 설렘을 잊지 못한 남녀가 30대에 다시 만나 그 사랑을 이어간다는 또 다른 설렘을 안겨주었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까.


비포 미드나잇


제시는 이혼을 하고, 셀린느와 결혼하여 쌍둥이 딸과 같이 산다. 전처에서 낳은 아들은 (선셋에 이 아들 이야기도 나온다. 흑흑.) 엄마와 살지만, 방학 때는 아빠의 가족과 함께 지낸다. 그리스로 휴가를 온 제시와 셀린느.


첫 장면은 잠시 같이 시간을 보낸 아들을 다시 엄마에게로 돌려보내는, 공항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머물고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 영화 내내 또다시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삶의 고민, 고충, 기쁨, 행복에 육아가 끼어든 것이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아주 여파가 크다.

제시와 셀린느도 아이와 자신 사이에서 시간의 배분이 힘들고, 누가 더 많은 희생을 하는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다. (게다가 그들 사이엔 제시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끼어있다. 그러니 둘 다 잘못은 없지만,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해라기보다는 그냥 입장이 달라서 생기는 배려와 희생, 애틋한 감정의 폭이 다를 때 생기는 서운함의 미묘한 차이랄까.)


거의 셀린느가 다다다 말하고, 제시는 자신도 많이 하고 있다는 식의 대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2013년 개봉 당시에 봤을 때는 맞아, 그렇지. 육아에 대한 대화는 남녀가 늘 저렇게 기승전 네 탓으로 되지.. 하면서 그냥 공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시간이 흘러 그 장면을 다시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결혼이란 건 원래 내 삶에 네가 들어오는 것이고, 네 삶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아이가 들어올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이 강요가 아닌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전 정말 몰랐어요. 이럴 줄.’ 하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과 현실은 특히 결혼생활에선 더 많은 간극을 초래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알지 않나. 겪어보진 않았지만, 숱하게 듣고 보고 했을텐데. 예상은 했어야지. 그러니 ‘넌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말하는데, 내가 너보다 더 희생하고 있어.’ 라기보다 내가 할 일을 좀 더 나누고 싶다는 쪽으로 대화를 하는 게 좋겠다.


그 사이 육아 몇 년 해봤다고 도를 닦은 건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류의 대화에서 서운함이 울분으로 바뀌는 건 당연하다. 싸울 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대화만 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성을 유지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모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안다. 감정적이고 서로를 할퀴는 대화는 둘 사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미드나잇은 선라이즈나 선셋보다 훨씬 현실적인데, 그건 아마도 그들이 부부가 됐기 때문이지 않을까.


싸움 후 셀린느는 나가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 제시가 셀린느에게 다가가, 시간여행자 운운하며 화해를 시도한다. 감정이 폭발해 “난 이제 너 사랑 안 해.”라는 여자에게 뜬금없는 타임머신 이야기라니. 다큐로 물었더니 코미디로 답한다는 셀린느의 대사처럼, 그와 그녀는 싸울 때도 화해를 시도할 때도 방법이 다르다.


그런데 화해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제시처럼 화를 잠재우고, 내 기분이 풀리지 않았어도 손을 내미는 것 말이다. 애석하지만 셀린느는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안다. 제시가 화해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래서 셀린느도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손을 잡기로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표정을 바꾸며 대화를 이어가고, 영화는 끝이 난다.




해가 뜨면, 예약된 기차를 탈 시간이 온다.

그럼 헤어져야 한다.

해가 지면, 예약된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온다.

그럼 헤어져야 한다.

한밤중이 지나가 버리면, 간만에 둘만 있을 수 있는 황홀한 밤이 사라진다.

그럼 다시 일상이다.


그들은 늘 끝이라는 기한을 두고 만났다가, 끝낼 수 있다는 자신의 의지에 쉽게 무너졌다.


왜? 그를,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결혼을 했지만, 언제든 형식적인 관계는 끝날 수도 있다. 그저 기차나 비행기를 타야하는 예약된 시간이 없을 뿐이다.


그 기한을 깨는 건 그들의 마음이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들의 사랑이 모습을 달리해도 여전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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