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이가 이상하다. 밥을 잘 먹다가도 딴생각을 하느라 젓가락을 놓치기도 하고, 냉수에 믹스커피를 넣고는 휘휘 젓다가 그제야 뭉쳐버린 가루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정신이 딴 데 가있는 것 같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럴까.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 내 시선을 의식한 듯, 한 번 쳐다보고는 “잠깐 깜박했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다. 곧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바보 같아.”하고는 누가 뭐랬나 한마디 덧붙인다. “놀리지 마”
그래도 자신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아직 바보까진 아니라는 거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점점 증상이 묘해지는 걸 보니.
엊그제는 점심을 먹다가 핸드폰 벨이 울리자,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곤 화들짝 놀라서 받기 전부터 눈빛이 달라졌다.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커지고, 검은 눈동자에 또렷한 생기가 흘러 반짝였다. 눈빛을 바꾸는 것만으론 모자란 지, 목소리까지 가다듬었다. 하긴 상대방은 눈빛이 아닌 목소리로 판단하니까.
주영은 헛기침을 큼큼 서 너 번 하고는 받았다. 물론 목소리도 변조해서. 뭐 그렇다고 애교 넘치는 여배우나 유명 DJ 같은 건 아니다. 평소보다는 친절해보이긴 하지만. 긴장된 “여보세요.”후에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더니 목소리는 급격히 힘을 잃었다. “관심 없습니다.” 하고는 툭 끊어버렸다. 무어라 말하고 있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무래도 광고성 전화인가 보다. 주영인 핸드폰을 내려놓고, 소파로 가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밥을 먹다 말았다는 건 까맣게 잊은 듯 했다. 밥을 마저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안 먹을 거면 치우기나 하든가, 치우지도 않고 식탁에 벌려놓은 채로 딴짓이다. 냄새 폴폴 나게.
주영이를 알게 된 지는 6년쯤 됐다. 매일 같이 만나 쉴 새 없이 말하고, 듣고, 말하고, 들었다. 사실 대부분은 주영이가 계속 말하고 나는 주로 듣는 역할이었다.
주영이는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5회 출근에 야근이 기본인 회사에 다녔었다. 직장인 일 때는 상사와 동료에 대한 에피소드부터 회식 불만까지 모조리 내게 들려줬다. 마치 내가 그녀의 일기장인 냥. 종이가 아닌 내 머릿속에 남기려는 듯이 말이다. 팀장이 회식 때마다 국민 회식 격인 삼겹살을 두고 곰장어나 돼지껍데기를 먹으러 간다느니, 옆 동료는 퇴근 한 시간 전부터 화장을 한다느니, 주로 그런 얘기들이었다.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았는데, 듣다 보면 자랑이거나, 대놓고 자랑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별의 순간에 옆에 있어준 것도 나였다. 어찌나 울던지. 훌쩍이며 코를 계속 푸는 바람에 벌건 코가 다 닳아버릴 것 같았다. 어쨌든 혹독한 시간이 생각보다는 짧게 훅 지나가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 과정을 다 지켜보았으니 주영이에 관한 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주영이의 모습이 전과 많이 다르다는 걸 난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